세상 만물에는 그 발생의 근원인 씨가 있다. 우주의 탄생을 빅뱅이론으로 설명하는 것도 씨의 원리인 것 같다. 작은 알갱이가 대 폭발을 일으키며 폭발을 거듭하여 우주가 탄생되었다는 이 이론은 언뜻 보기엔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삼라만상 만물 모두가 작은 씨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이 이론을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금년 초부터 농촌에 내려와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씨앗들을 접하게 되었다. 코스모스(우주)씨, 나팔꽃씨, 봉선화씨, 접시꽃씨, 박씨, 호박씨, 감자씨, 고구마씨, 조씨, 수수씨, 목화씨, 메밀씨. 도토리씨..... 정말 많은 씨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나 자신도 씨에서 나왔고, 또 하나의 씨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씨. 우리는 씨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김씨, 권씨, 박씨, 조씨, 최씨, 강씨, 홍씨 등 수 많은 씨가 있고 저마다 씨를 퍼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을 부를 때도 남성에게는 김철수씨, 조상태씨, 아저씨 등으로 부르고, 여성을 부를 때도 김숙희씨, 유금자씨, 권은주씨 등으로 부른다. 여성을 아주머니라고 부를 때는 ‘씨’가 들어가지 않지만 주머니에 씨가 들어가야만 아이가 탄생되니 아저씨는 ‘아이 씨’, 아주머니는 ‘아이주머니’라는 우스개는 진담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여성에게도 ‘씨’를 붙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여성이 없으면 아기가 탄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씨. 씨는 작지만 그 내용은 우주만큼이나 위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개만 심어도 수십 개 아니 수천 개의 씨가 된다. ‘농사짓는 일이 하늘아래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한 것도 바로 씨로부터 세상 사람이 먹고 살 풍부한 양식을 생산할 수 있기에 내려진 정의일 것이다. 특히 어떤 씨는 심으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불어난다. 예를 들어 조 씨의 경우는 한 알갱이만 심어도 이삭이 되면 수천 개의 조 씨가 나온다. 만일 밭 한마지기에 조를 심는다면 아마 수십조 알의 조 씨가 나올 것이니 그래서 ‘조’와 ‘조(兆)’는 통하는지 모른다.
씨. 씨는 모든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온전히 담고 있다. 씨는 씨에서 생하고 씨로 멸함과 동시에 더 많은 씨를 만든다. 사람이 먹는 곡식씨는 그냥 소멸되는 것 같지만 사람이라는 씨를 생성하는 좋은 영양이 된다. 곡식씨가 없으면 사람 씨인 김씨, 강씨, 이씨도 영양을 얻을 수 없어 씨가 되지 못하니 한 톨의 곡식이라도 사람으로서는 생명의 씨라고 보아야 한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식용하는 동물들도 전부 씨라고 볼 수 있고, 그 동물씨도 사람인 김씨, 이씨, 박씨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씨. 씨는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이면서도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다. 씨는 물질이면서 정신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형이하학적 씨를 먹고 태어났다. 그리고 형이상학적 종교를 만들었다. 눈에 보이는 씨를 활용하는 일은 자연과학이 담담하여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씨를 가꾸는 일은 철학과 종교가 담당하여 왔다. 사람은 누구나 눈에 보이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 몸이다. 사람은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다. 어느 씨앗이든 좋은 씨앗이라야 좋은 사람이 된다. 몸의 씨앗도, 마음의 씨앗도 좋은 씨앗이어야 좋은 김씨, 좋은 이씨가 될 수 있다.
마음의 씨앗을 좋게 만드는 좋은 씨앗은 종교이며 불교, 유교, 천주교, 기독교 등의 종교 씨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석가모니씨와 공자씨, 그리고 예수씨가 계신다. 그 분들의 씨앗은 오래 전에 싹터 수많은 좋은 사람씨를 만들어 냈다. 佛씨는 인도에서 싹 터 중국, 우리나라, 동남아시아로 그리고 화계사를 통해 서구로 전파되고 있다. 공자씨는 중국에서 싹터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등 동아시아의 학문적 기틀이 되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싹터 구라파와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들어왔다.
나의 마음에 어떤 좋은 씨를 심을 것인가. 그것은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佛者는 佛씨를 택한 분들이다. 좋은 佛씨를 마음에 심어 언제나 佛心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불자들의 생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라는 스탠드에 불씨를 꺼트려선 안 된다. 항상 佛心을 일으켜 부처님의 광명을 받아야 한다. 다른 종교인도 해당 종교의 씨앗을 마음에 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씨를 심던 마음에 장막을 쳐서는 안 된다. 장막을 치면 좋은 불씨를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 다 아는 말씀인데 무슨 씨 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냐고요? 네. 할 말이 없어 그냥 제 마음에 두고 있던 ‘씨론’을 정리해 보았어요. 그런데 우스개 하나 할까요? 호박씨는 무엇으로 까먹는지 다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