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옛날 옛적에 거울을 발명했다. 구리거울로부터 유리거울까지, 그리고 확대경에서 축소경까지, 카메라에서 캠코더까지, 망원경에서 현미경까지 모두가 거울이 발전한 것이다. 인간의 형상은 어느 거울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소인이 되기도 하고 거인이 되기도 하며, 추하게 보이기도 하고 예쁘게 보이기도 한다. 거울은 인간이 스스로를 비추어볼 수 있는 점에서 참 좋은 물건이다. 거울이 없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우리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아 불편을 느낀다. 옆 좌우 180도 방향에서부터 뒤 부분은 ‘도리도리’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뒤통수에 눈이 하나쯤 달려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자신의 구석구석, 물건의 구석구석을 볼 필요가 있을 경우 중간 손가락이나 약손가락중의 한곳에 작은 눈이 붙어 있다면 참 편리하겠다는 황당한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돌연변이로 진화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런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거울이 또 하나 있으니 곧 마음의 거울이다. 각자의 마음은 저마다의 내면의 거울이다. 마음으로 자신을 보고 반성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마음을 거울처럼 잘 가지면 자신을 잘 조정할 수 있다. 종교에서는 마음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어느 종교든 마음을 잘 다스리는 법을 가르친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한다. 조물주에게 의지하던, 스스로 깨닫게 하던 모두가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한다. 마음공부는 마음을 닦는 일이라 한다. 그런데 마음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비누나 하이타이로는 마음을 닦을 수가 없다. 세수하듯이 마음을 씻을 수도 없고 거울을 닦듯이 헝겊으로 마음을 닦을 수도 없다. 그러면 무엇으로 마음을 닦아야 할까?
곰곰 생각해보니 마음을 닦는 도구는 마음 스스로인 것 같다. 마음이 마음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아니고는 마음을 닦는 수단이 없다. 어떤 물건으로도 마음을 닦을 수는 없다. 간혹 예쁜 꽃이나 시원한 녹음綠陰, 잔잔한 호수, 푸른 하늘이 마음을 정화시켜줄 수는 있어도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또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은 꽃과 신록과 호수를 보아도 마음이 닦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을 닦을 수 있는 수단은 바로 그 마음 자체라는 것이다. ‘이심정심以心淨心’인 것이다.
마음이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불교인이건 기독교인이건 마음을 닦는 공부가 최고 좋은 공부라 말한다. 부처님은 불교인의 마음을 다양하게 말씀하시며 사람들을 깨우치셨다. 불경은 부처님의 마음이 말씀으로 표현된 것이다. 예수님은 기독인의 마음을 다양하게 말씀하시며 사람들을 교화하셨다. 성경은 예수님의 마음이 말씀으로 화현한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결국 우리 마음의 거울보다 더 큰 거울이다. 부처님은 자비라는 마음의 거울을 비추시고, 예수님은 박애라는 마음의 거울을 비추신다. 부처님의 거울과 예수님의 거울은 우리 마음의 문을 열 때라야 잘 보일 수 있다. 부처님이 우리의 마음을 맑고 밝게 비쳐주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이 빗장을 걸고 있으면 마음의 거울이 닦아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의 거울을 깨끗하게 씻어주려 해도 우리의 마음이 문을 닫고 있으면 마음의 거울이 닦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 나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마음의 문을 열 필요가 있다. 예수님 앞에 나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마음의 문을 오픈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문은 곧 양심일 것이다. 양심은 좋은 마음, 인간적인 마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는 마음이다. 양심이 부족한 사람은 타인과 화합하기 어렵다. 양심이 있어야 가정생활도,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양심이 있어야 경전의 말씀도, 성경의 말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경전의 말씀, 성경의 말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마음의 거울을 밝게 닦아 세상 만물의 이치를 잘 보고, 그 이치대로 올바르고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잘 닦여진 내 마음은 나의 내시경이다. 마음의 내시경은 온갖 사물과 정신의 면모를 잘 파악하고 병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마음에 좋은 내시경을 갖춘 사람은 뒤통수에 눈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얄궂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마음으로 다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좋은 내시경을 갖춘 사람은 가운데 손가락에 작은 눈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의 내시경으로 나와 남을 속속들이 다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을 가지고 불경을 공부하는 것은 내 마음의 내시경을 맑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양심을 가지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내 마음에 내시경을 밝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내 마음의 내시경, 내가 아니면 누가 만들랴! 나 하나만 믿어 온 마음.(화계법보 2009.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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