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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청소가 가장 쉬웠어요

청소가 가장 쉬웠어요

그날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평소대로 주간보호센터 청소를 마치고, 집에 와 샤워한 다음, 대전 중앙시장 어느 국밥집에 들어갔습니다. 다 먹고 살기 위한 거라 일한 만큼 점심을 든든히 먹기 위해서였죠. 소머리국밥을 주문해 혼자 먹다 보니 자연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었어요. 저쪽 식탁에는 남성 노인 둘, 여성 노인 하나, 그렇게 셋이서 지나간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고, 바로 앞 식탁에는 한 사십 들어 보이는 젊은이가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어요. 그때 주인아주머니가 젊은이에게 충고를 했어요.

“재호야, 이제 술 그만 마시고 일 가, 너 자꾸 그렇게 하면 노숙자 돼, 어서 일 가.”

하니 그 젊은이는

“예.”

하고 대답을 잘해놓고는 맥주를 한 캔 더 시켰습니다. 가라고 하던 아주머니는 또 맥주를 꺼내다 대령하며

“이것만 먹고 가, 알았지?”

하니 그 젊은이는 또

“네.”

하고 대답을 잘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젊은이는

“아줌마, 저 화장실 갔다 올게요.”

하며 담배를 가지고 나가네요.

저는 그사이 벽에 붙어있는 글귀를 하나 눈여겨보았습니다.

“眞金不鍍”,“一切唯心造”

두 글귀가 서로 의미상 연결되는 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일체유심조는 많이 들어본 말,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는 불교에서 나온 말이지만, 眞金不鍍(진금불도)는 처음 본 말이라 생소하여 스마트폰에서 鍍 자를 찾아보니‘도금할 도’라네요. 그래 그 네 글자 참진, 금 금, 아니 불, 도금할 도를 조합하여 뜻을 새겨보니,

“진짜 금은 도금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말입니다. 맞죠, 순금인데 무슨 도금이 또 필요할까요? 정말 맞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 젊은이는 화장실에 다녀와서 또 맥주를 마시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의 선배로서 그 젊은이에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젊은이, 대전에 살아요?

“네.”

“어디로 일 나가나요?”

“물류센터요, 밤에 일해요.”

“아, 그래요? 젊은이 멋있어 보이는데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대전 ㅇㅇ 고등학교요, 그리고 대학은 ㅇㅇ 대학교 다니다 그만뒀어요.”

“아 그래요, 아까 아줌마 말대로 술 그만 마시고 어서 가면 좋겠네요. 대낮부터 취하면 어떻게 일하게요.”
“아줌마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

젊은이는 또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줌마가 저에게 뭐라고 나무랐습니다.

“왜 그런 사람한테 말을 붙여요? 정신 나간 사람이란 거 보면 몰라요? 나한테 화장실 갔다 온다고 보고하는 거 보면 몰라요?”

“아 네, 그러네요. 그래도 좀 도움이 되려나 해서요.”

참 허전했습니다. 어떻게 인물도 멀쩡하게 생긴, 안경까지 낀 젊은이가 저렇게 되었을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저 벽에 붙어있는 일체유심조와 진금불도의 뜻을 되뇌어 보았습니다. 정말 세상에는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나이가 럭키 세븐의 열 배 럭키 세븐티가 되도록 살고 있지만, 살아오면서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웠던 일은 정신을 못 차릴 때의 일입니다. 주위에서도 우울증이나, 정신 이상, 치매 등 정신을 못 차리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역전에서 소리치고 다니는 사람, 대낮에 역 계단에서 술 먹고 떨어져 자는 안경 낀 노인, 무슨 보따리를 세 개, 네 개 잔뜩 가지고 멍하니 앉아 있는 여성 노인, 저럴 정도로 건강하다면, 어디 청소라도 하고 살지.

저는 노인 일자리라는 직업(?)으로 청소 일을 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전에는 좋은 직장에도 근무해보았지요. 그러나 나이가 드니 모든 일이 줄고, 중단되고, 해서 복지관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그림도 배우고, 우쿨렐레도 배우고,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이 모든 게 막혀 답답합니다. 하나 남은 게 노인 일자리 일인데요. 청소는 집에서도 늘 하는 일이라 쉽습니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전에 어떤 막노동꾼 학생은“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냈는데 요즘 저는 청소가 가장 쉬워요. 眞金不鍍, 도금이 필요 없는 금쪽같은 인생을 살려면 一切唯心造, 때 묻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닦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21.4.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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