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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법주사에서

법주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오늘(2021.04.07.수) 법주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즉흥적인, 너무나 즉흥적인 결정입니다. 봄이 오셨는데도 봄바람을 쐬지 못해 아마 너의 본능적인 마음 기제가 작동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건 좋은 거죠, 뭐. 10시 40분에 차를 몰고 일단 옥천으로, 다슬기 아욱국 집에서 11시 35분에 이른 점심을 먹었습니다. 토속 된장에 아삭 고추를 깨물며 구수한 다슬기국을 들이켰습니다. 홀아비는 언제나 배가 고픈 걸까요? 하하. 커피는 일단 생략하고 다시 차를 몰았습니다. 4차선 국도, 시속 60~80km, 봄 향기 그윽한 산야, 연두와 초록과 분홍과 온갖 색깔이 차 앞 유리를 향해 투명행정을 베풀고 있네요. 박인희의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사랑의 정서를 느끼며, 너도 봄을 향해 너의 왜소한 사랑을 전해봅니다.

법주사 입구에 이르니 주차비를 내라네요. 5천 원, 시간제한은 없다는데, 밤샐 일은 없을 겁니다. 법주사 입구 도로는 평지 숲길입니다. 나무와 풀과 시냇물과 경쾌한 새 소릴 보고 들으며 유유자적, 어느새 웅대한 금동불상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이 세운 작품이지만 마음에 평화를 내려주는 자비 광명의 기운을 느껴봅니다. 원래 청동 불상인데, 10여 년 전부터 금으로 새 옷을 입혀 금동불이 되었다는 전설이올시다. 하하. “역시 금은 좋은 건가, 지금 금 한 돈에 얼만가? 너는 결혼 금반지도 다 팔아먹고 지금은 틀니라서 금니도 없는데, 하하, 그래도 허전하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이 홀가분해 좋은걸. 너는 아마 금값을 모르는 인생인가보다.”

팔상전은 5층 건물, 대웅보전은 2층 건물, 1500년 고찰인데 단층이 아닌 한옥 빌딩입니다. 법주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산지 승원 중 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홍보 안내문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역시 큰 사찰이라서 그런 불교 외적 광고에는 요란히 나서지 않는 듯한 인상, 다만 사찰 안내 리플릿(leaflet)에는 영문으로 소개되어 있네요. 안동 봉정사는 입구부터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는데,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아마 주지 스님의 성향일까요?

경내를 한 바퀴 시찰하고 전통 찻집으로 들어갑니다. 커피를 한 잔 시켜 놓고 창문을 통해 자연의 풍경을 감상합니다. 철마다 날마다 바뀌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입체적, 시공간적이라서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집니다. 한마디로 미술과 음악의 4차원 조화라 할까요? 아마 자연은 태고 때부터 4차산업혁명을 한 것 같습니다. 어디 4차뿐이겠습니까, 불교적으로 말하면 8차 산업혁명, 아니 산업을 빼고, 8차 마음 혁명, 저 모든 시공간이 마음에 들어와 녹아 생명을 노래하다, 또 고목처럼 거름이 되고, 이러한 진리가 부처님의 8만 4천 법문으로 화하여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찻집은 책도 팔고 있다는데 법주사 『법요집』 말고는 책이 없습니다. 찻집 보살 왈, 책이 잘 안 팔린답니다. 너는 들고 갔던 너의 불교 인문 수필집 『뭘 걱정하세요』 한 권을 그 찻집에 기증했습니다. 그 노 보살은 반가워하며 ‘애기 보살’이 좋아하겠다고 하네요. ‘애기 보살’이란 찻집 일을 같이하는 젊은 보살이랍니다. 다시 경쾌한 냇물 소리를 들으며 속세를 벗어나 있다는 속리산(俗離山)에서 다시 속세로 돌아왔습니다. 2021.4.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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