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봉정사에서
2021년 2월도 일주일 남았습니다. 2월이 가면 춘 3월, 3월엔 새 학기가 시작되니 바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일요일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즉흥적인 결정이지만 마음에 잠재된 예정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사찰 순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산지 승원 7곳,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대흥사, 선암사. 이들 중에 네가 가보지 못한 곳은 안동 봉정사와 순천 선암사입니다. 순천 선암사는 길이 멀어 하루에 다녀오기 버겁고, 안동 봉정사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10시 반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일단 옥천으로 가서 전에 농업 친구가 소개해준 올갱이(다슬기의 방언) 맛집에서 11시 반 이른 점심을 먹었습니다. 속이 확 풀리는 다슬기 아욱국, 정말 일품입니다. 집된장에 풋고추와 양파를 찍어 먹는 맛도 너에겐 고향 진미, 주인에게 된장을 파느냐 물어보니 1통에 1만 5천 원이랍니다. 여행길에 된장 단지? 하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사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내비게이션을 틀고 달렸습니다. 보은을 지나 상주 안동, 스마트폰 배터리가 소진될까 염려되어 내비게이션을 껐더니 지름길을 놓쳤네요. 길이 완전히 달라져서 예전의 국도 같지 않습니다. 전부 고속도로, 고속도로에서는 길을 한번 잘 못 들면 엄청나게 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오후 2시 20분경 봉정사에 도착했습니다.
겨울이 채 떠나지 않은 봄날, 천등산 아래 자리 잡은 봉정사는 아담합니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흙 돌계단 위에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서 있는 절집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다른 절과는 다른 고전미를 맛봅니다. 현대적 토목건축 자재가 하나도 안 보이는,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절입니다. 근현대에는 중창 불사를 하지 않은, 그렇다고 모진 풍파에 방치하지도 않은, 그래서 온전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주름살 아름다운 고승 대덕의 품입니다. 너는 절 입구에 있는 역사 유래를 읽어볼 것도 없이 그냥 돌아다녔습니다. 그건 자료에 다 있으니까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로 알려진 극락전, 무량수전에 비하면 규모는 작았지만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멋진 모습입니다. 대웅전에 들어가 절을 했습니다. 기립 합장 절입니다.
절에 스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앰프의 남 저음 목청 염불 소리가 우람한데, 그 소리를 음악으로 깔고 너는 1분 비디오를 제작했습니다. 제법 영화 같은데요. 하하. 그런데 너는 절에 올 때마다 아쉬운 게 하나 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 말입니다. 차담이라고도 하죠. 어느 절에 가든 스님들과 대화하기는 참 어렵죠. 절을 그냥 구경만 하고 가라는 식으로 사람들을 방치하며, 무슨 기도나 접수하면 반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처님의 뜻이 아닌 것 같아요. 이 사회, 물리적으로 변화무쌍한 세월, 특히 이 코로나 세월을 어떠한 마음 자세로 극복하고 국내외 평화를 유지해야 할지, 으뜸(宗)의 가르침(敎) 종교라면 그런 가르침을 주셔야 할 텐데요, 오늘의 종교인들은 어디에 은둔하고 계시는지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인가요? 언 콘택트(un contact) 때문인가요? 오후 3시 반 허전한 마음으로 하늘이 등불을 밝힌 천등산(天燈山) 봉정사를 나오며 내일 할 일을 생각해 봅니다. 속리산 휴게소 칸막이 삼엄한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저녁 7시에 대전에 도착했습니다. 2021.2.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