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골의 찻집에서
2021년 1월의 마지막 날 일요일, 한 달 동안 세워 둔 차를 몰았습니다. 차를 너무 세워만 두면 안 된다는 말도 있고, 콧바람도 쐬고 싶고. 목적지는 며칠 전 1963년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전화로 소개해 주신 ‘밀목재’ 그 산골의 찻집입니다. 아침 11시 집을 나서 한밭대로를 달려 유성을 지나 박정자로 갔습니다. 박정자는 동학사로 들어가는 갈림길 정자나무가 있는 곳인데, 정자에 왜 박자가 들어갔는지는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아마 그곳에 박 씨가 살았는지도 모르죠. 식당에 들어가 전에 먹어본 적 있는 그 해물짬뽕을 먹었는데요, 조가비가 듬뿍 들어 있어 시원합니다.
이어서 계룡시로 넘어가는 길 오른편 그 찻집을 찾아갔습니다. 밀목재 마을은 우리 초등 24회 동기 동창 4명이 살던 동네인데 지금은 예전 주민들이 거의 다 떠나고 마을의 지형도 바뀌어 산골이지만 상업지구처럼 되어버렸네요. 찻집과 공방이 몇 개 보이는데 무조건 가장 규모가 큰 ‘밀목재 찻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초등 29회 동문 이 아무개 이름을 대며 그 동문이 운영하는 찻집인지 물으니 맞다 하네요. 하지만 주인은 출근 전이라 만나지 못했습니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카페 실내장식과 바깥 풍경을 번갈아 감상했습니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황순원의 소설 제목이 생각나는 산골(사실 황순원의 이 소설은 산골의 나무 정서와는 관계가 없는 전쟁과 인간의 비애를 다룸).
동창들과 함께 우쿨렐레 연주하며 노래하고 놀고 싶은 아름다운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가장 먼저 고향의 봄을 부르고 싶군요. 하하, 졸졸 시냇물아 어디로 가니, 그 노래도 부르고 싶고. 저의 고향은 계룡산 상봉 동쪽 아래 이성계가 잠시 머물렀다는 우적(禹跡)골인데 지금은 정부 방침에 따라 인걸(人傑)이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참 아쉽죠. 우리의 학교가, 예전의 정겹던 지명과 역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또 공상에 빠졌습니다. 고향의 지리지를 편찬하자고. 우리가 안 하면 그곳의 역사는 남지 않을 것이니 그곳 출신 동문들이 협의하여 신도안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인물들의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고.
요즘 철도공단에서는 전국 철도역 100곳에 대한 지명 유래를 책으로 펴냈다고 합니다. 또 철도역 400여 곳에 그곳의 지명 유래와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세운다고 하네요. 또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그 지역의 면지(面誌)를 편찬했다는 소식입니다. 그 지역의 지명과 역사 인물까지 지역 주민들이 직접 쓴 면지라 그 지역의 인문학적 의미가 크다고 서울대 인문학연구소 안재원 교수가 평가했다고 하는데, 안 교수가 아마 그곳 출신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분은 희랍고문헌 연구의 대가이며 특히 희랍어를 잘하는 분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안 교수의 인문학 강의를 한 학기 들었거든요. 하하. 그러니 우리도 신도안이라는 그 고향의 면지를 못 낼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면지라고 하지 않고 <신도안 지리지, 지명의 유래와 인물>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2021.2.2.(화).
『보절 면지-보배와 절의가 숨어있는 보절 이야기』. 보절면지편찬위원회. 논형. 2020.12.20. 612쪽/221*282mm, 9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