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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수면 내시경과 『소금이 나오는 맷돌』

수면 내시경과 『소금이 나오는 맷돌』

글의 제목에서 짐작하시다시피 수면 내시경과 소금 맷돌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들으니 관계없는 것을 관계있게 엮는 능력이 창의력이라 해서 한번 창의력을 시도해봅니다. 오늘 위의 두 가지를 다 경험했거든요.

오늘 병원에 가서 수면 내시경을 받았습니다. 미루어두었던 2020년도 건강검진을 오늘 2020년 10월 13일(화)에야 받았습니다. 저는 건강검진에서 가장 힘든 종목이 위 내시경검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전의 경험상 그렇습니다. 목구멍에 거울 달린 기계를 막무가내로 밀어 넣으면 삼키기 고통스러워 저는 주로 조형 촬영을 택했었는데요, 이번에는 추가 비용을 내고 수면 내시경을 받았습니다. 몸 거치대에 왼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옆으로 누우니 뭔가 손목에 붙이고 진정제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잠을 안 잔 것 같은데 어느새 검사가 끝났다네요. 9시 40분에 들어갔는데 눈을 떠보니 11시, 약 30분을 더 쉬니 일어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네, 하니 검진이 끝났으니 식사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내 위장에 내시경이 들어왔던 사실을 전혀 몰랐다니 의술이 요술입니다. 아마 죽는 것도 이럴 것 같아 안심되는데, 다만 죽으면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만 다를 뿐이겠죠.

저는 건강검진을 마치고 인근의 단골 가정식 백반집에 들어가 마치 아침 굶은 시아버지처럼 1식 7찬 (진수) 성찬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허겁지겁 먹어 치웠습니다. 그릇을 다 비웠으니 설거지하기에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장 집에 돌아와 오후 2시 수업준비물을 챙겨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한밭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손주와 그림책 가지고 놀기”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라서요. 수업에서는 역시 먼저 성우 발성 연습을 하고 그림책 한 권을 역할을 분담하여 읽었습니다. 오늘의 그림책 제목은 『소금이 나오는 맷돌』. 등장인물은 욕심쟁이 형과 착한 동생, 그리고 도깨비입니다. 아, 도깨비는 인물이 아니군요. 어쨌든. 형에게 구박받는 동생은 어느 섬에 들어가 부지런히 밭을 일구는데, 큰 돌을 하나 빼내니 도깨비가 나왔습니다. 도깨비는 무슨 벌로 땅에 감금당했는데 이 착한 농부가 구원해 준 셈입니다. 도깨비는 그 착한 농부에게 요술 맷돌을 선물했습니다. 그 맷돌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나오는 맷돌, 그래서 동생은 부자가 되었답니다.

동생이 부자가 된 것을 안 심술쟁이 형은 동생한테 와서 그 요술 맷돌을 빼앗아 배에다 싣고 갔는데요, 착한 동생이 꼭 해주고 싶은 말, 보물이 그만 나오게 중단하는 주문을 일러주려 하는데 욕심쟁이 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무조건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욕심쟁이 형은 배를 타고 가면서 ‘소금 나와라’, 하니 정말 소금이 줄줄 나와 기뻐하는 데 소금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배가 바다에 침몰하고 있는데 심술쟁이 형은 소금을 그만 나오게 하는 주문을 몰라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줄거리인데 각자 역할을 맡아서 연기한 것입니다.

요술 이야기는 판타지, 현실에서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을 길러주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형제간의 인간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뭐 은연중 이런 걸 알려주죠. 이런 종류의 옛이야기는 참 많죠. 그런데 강사의 기법은 다용도. 이 이야기를 통해 맷돌을 본 적이 없는 새 세대들에게 맷돌을 알려주고, 맷돌의 손잡이 ‘어처구니’를 알려주며, 나아가 소금의 과학, 소금과 음식 요리, 바닷물이 짠 이유, 등에 대하여 연계수업을 할 수 있다 하네요. 정말 그렇군요.

하하, 오늘 받은 수면 내시경은 저에겐 정말 요술 거울입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과거에는 요술이었을 수면 내시경의 이 현실, 오늘 꿈나라에서 받은 수면 내시경은 저의 현실적 고통을 덜어주었습니다. 오늘 받은 소금 맷돌 동화는 현실이 아닌 꾸며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하여 어린이의 마음에 상상력, 인성과 지성까지도 자연스럽게 길러준다면 제가 오늘 받은 요술 수면 내시경 그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30년, 100년 후에는 만인에게 건강, 인성, 사랑의 마음이 충만한 인간 세상이 실현되지 않을까요? 오늘 제가 받은 선물은 수면 내시경의 안락과 요술 맷돌의 인간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처구니만 있다면 말이죠. 2020.10.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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