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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느티나무 심은 뜻은

느티나무 심은 뜻은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나 흔히 있는 동구 밖 그늘나무입니다. 느티나무는 과일나무는 아니지만, 과일나무 이상으로 우리에게 시원하고 아름다운 휴식을 선사합니다. 느티나무가 어릴 때는 그늘이 별 볼 일 없으나 수령이 한 50년쯤 되면 위력을 발휘하지요. 왜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냐면 엊그제 선친의 느티나무를 친견하고 왔기 때문입니다. 선친께서 1930년대 중반에 심으신 그 암용추 느티나무, 그 나무는 수령 100년을 바라보며 정정하게 서 있습니다. 그때 선친께서는 새말랑 고개, 옥년당 고개, 암용추, 이렇게 세 곳에 느티나무를 심으셨는데, 그 암용추 느티나무만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직접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 나무를 심은 뜻은 그곳을 지나는 인류에게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요.

추석이 일주일 지났는데 포천 큰조카가 전에 외갓집이 있던 우적골에 가고 싶다고, 미국서 온 아들이 차를 몰고 온다고 전화가 왔네요. 그래서 네가 살던 고향, 그곳을 안내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1980년 초 국가가 수용하여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적막강산입니다. 2020년 10월 6일 오전 11시, 조카가 차를 몰고 너를 픽업하러 왔네요. 함께 차를 타고 동학사 쪽으로 가 좌회전, 밀목재를 넘어 행정 안내실에 도착했습니다. 출입 절차를 마치고 우린 아무도 살지 않는 그 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시원한 공기와 물소리, 개울가 폭넓은 반석, 조카가 감탄합니다. 그 아들도 엄마를 따라 탄성을 연발합니다. 조카의 아들은 너에겐 손자 벌입니다. 벌써 40이 넘은 중년의 학자, 공부를 잘해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석사, 박사를 마치고 독일 유학을 거쳐 지금은 미국 모 주립대학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도 없는 숲을 헤쳐 전진, 전진, 골짜기 중간쯤 들어가 봅니다. 숲이 빽빽해 양쪽 산비탈은 보이지 않고 마치 저수지처럼 생긴 작은 하늘만이 우릴 빤히 내려다봅니다. 어릴 때 16년이나 살았던 고향이기에 너는 그곳 반석과 돌 하나까지도 낯이 익습니다. 누나들이 다 타계하셨으니 그곳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은 이제 너밖에 없습니다. 숲속을 걸으며, 옛이야기를 나누며, 너는 조카에게 마음으로 참회를 했습니다. 너는 그때 그 5~6세 어린 조카를 놀리고 구박했었거든요. 철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걸 보면 좀 심했나 봅니다. 그래서 지금도 미안해 죽겠습니다. 그래도 조카는 모진 가난의 풍파를 이겨내고 아들을 훌륭하게 길러 미국의 유명한 주립대학교의 물리학 교수로 만들었으니 참 대견한 일입니다.

행정 안내실에서 3시 반까지 내려오라 해서 그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내려오며 암용추에 들렀습니다. 먼저 아버지가 심은 그 느티나무를 안아보았습니다. 장정 아름으로 세 아름은 될 것 같습니다. 거친 피부도 어루만져 보았습니다. 지금은 인적이 뜸해 예전처럼 인류에게 휴식 제공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아버지의 나무입니다. 마치 아버지처럼 그 자리에서 넉넉한 포용을 베풀며, 맑고 시원한 물의 노래를 경청하며 저렇게 푸르게 푸르게 천년을 살아갈 아버지의 나무, 너는 아버지의 화신을 보는 신령스러움을 느끼며 나무에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암용추 물에 손을 담가보고 조카 일행과 담소를 나누며 조카가 태어났다는 국사봉 아래 향한리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2020.1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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