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의 철학
안경을 새로 맞추었습니다. 안경을 산지 한 5년 지나니 알이 미세하게 긁히고 싫증도 나서 다시 맞추기로 한 것입니다. 이번엔 안경 점원의 권고에 따라 다초점 렌즈를 택하지 않고 일반 외출용 안경과 독서용 안경 2개로 주문했습니다. 너의 안경 경력은 약 40년, 원래 시력도 좋지는 않았지만, 직장에 사무직으로 들어가서 복사 서류를 많이 검토하다 보니 난시가 왔습니다. 요즘이야 복사 서류도 상태가 원본처럼 훌륭하나 당시는 복사 상태가 매우 열악했죠. 그래 그 이후로 너는 계속 안경을 착용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노안이 되니 다초점 안경이 별 효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편해졌네요. 그래서 외출용 안경과 독서용 안경 2개를 맞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추석 전에 안경을 찾아 착용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 돋보기를 활용하니 훨씬 좋습니다. 잔글씨도 잘 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 돋보기를 쓰고 걸어 다닐 수는 없습니다. 어지럽기도 하고 사물이 잘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돋보기로는 세상을 돋볼 수 없다는 체험을 하게 되네요. 우리는 되도록 세상을 돋보고 싶은데 돋보기로는 세상을 돋볼 수 없으니 대단한 아이러니네요.
외출용 안경도 세상을 돋볼 수는 없습니다. 초점이 좀 더 맞아 멀리 있는 사물과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장점, 이것이 외출용 안경의 효용입니다. 이 효용도 참 좋긴 좋습니다. 하지만 돋보기로도, 외출용 안경으로도 세상을 돋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는 아주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세상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진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죠. 물론 현미경은 미생물, 망원경은 우주를 관찰할 수 있어 인간의 과학을 놀랍게 발전시켜왔습니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살아야 인간답습니다. 사회생활에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들이대면 인간적 진실은 오히려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안경을 사용하며 다시 인생을 느낍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의 소원처럼 우리 눈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만 같아라”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떤 안경으로도 인간 세상을 돋볼 수 없으니 우리는 우리의 육안을 1.0에 두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참 좋겠다, 생각하게 되네요. 물론 과학자들은 그렇게 보면 과학을 못 하겠지만, 과학자도 인간인 이상 실생활에서는 인간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시력은 다 구비하고 있을 줄로 압니다. 며칠 후 건강 보험에서 제공하는 건강 검진을 받을 예정입니다. 너의 시력이 1.0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시력만은 1.0에 유지하며 세상을 밝게 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개천절이네요. 하늘이 열린 날, 눈을 새롭게 떠야겠네요. 2020.10.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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