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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12 열차와 인생 번호

12 열차와 인생 번호

1950년대 대중가요 중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 시절, 난민들의 이별을 구슬프게 표현한 노래입니다. 그래서 한국전쟁 이후 20여 년을 겪지 않은 신세대는 이 노래 가사와 곡조에 담긴 애환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지난 토요일 네가 이용한 열차가 서울행 1212 열차, 하하. <이별의 부산정거장> 제2절 첫 소절과 같은데 12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니 열차엔 번호를 부여했나 봅니다. 아마 철도청에서 열차 운행관리를 위해 번호를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하기야 관리를 위해서 사람들은 모든 것에 번호를 붙입니다.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하여 학교에서는 학번, 군대에서는 군번, 회사에서는 사원 번호, 자동차 번호, 전화번호, 교도소에서의 죄수 번호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각자의 인생에 과연 번호가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의 번호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기준이 없기 때문인가 봅니다. 나의 기준은 너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너는 나에게 번호를 부여하는 기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네가 1번이라면 내가 2번이 될 텐데, 너와 나의 위치를 바꾸면 같은 나라도 2번이 되었다 1번이 되었다 뒤죽박죽이 되어 번호에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인생에는 1번과 2번만이 존재하거나 아니면 누구나 0번이라는 느낌이 옵니다. 그래, 내 인생의 번호는 0번이지. 나는 누구의 기준도 아니니까.

그런데 디지털은 번호가 0과 1, 2개 밖에 없다네요. 2개의 번호가 교대하며 컴퓨터를 작동시킨다니 놀라워요.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0은 인생의 번호니만큼, 인생에도 이미 디지털 요소가 하나 있는 셈인가요. 인생은 0, 물질은 1, 하하. 그럴듯하네요. 인생이 0이라는 말은 불교적 용어로 ‘無我’가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인생은 대를 이어 충성하다 결국 무아로 돌아가는데, 저 수 많은 물질, 그리고 그 가운데 너의 기록물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요? 오늘은 “서울 가는 12 열차” 때문에 인생의 번호를 생각하다 思考에 혼선만 초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복지관에서 새로 도입한 컴퓨터 의료 진단기기에 너를 대입하니 체중 58kg, 근육량 정상, 체지방은 약간 높고, 스트레스는 0 라고 나왔습니다. 하하. 2020.11.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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