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그리고 현실
요즘 바리톤 김동규가 주로 부르는 노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음 부분의 음정 조절이 쉽지 않아 마치 음치처럼 되네요. 이 노래는 언뜻 듣기에 참 감미로운데요, 그 노랫말을 잘 들여다보니 연애의 감정이 매우 풍부하게 드러납니다. 주로 남성 쪽의 감정 표현 같은데, 조수미가 함께 부르기도 하니 완전히 남성의 노래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눈을 뜨기 힘든/가을보다 높은/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나를 깨운 전화/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지난 밤 꿈처럼/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너의 손을 잡고/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꿈을 꾸는 이유/모두가 너라는걸
네가 있는 세상/살아가는 동안/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그런데 이 노래를 계속 듣고 따라부르면서 노래 속 남성의 감정이 너무 나간 건 아닌지 의심해봅니다. 저렇게 한 여인에 푹 빠지다 얼마 못 가 헤어지거나 권태기가 오면 다 별 볼 일 없고, 후회만 남을 텐데, 과연 저렇게 좋은 사랑의 감정을 오래오래 지속하는 연인이나 부부가 있을까? 이런 의심이 드네요. 이럴 땐 노래가 바보 같고 재미없어지죠. 하하. 시와 노래는 현실이 아니라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봐요. 시처럼 되고, 노래처럼 되는 현실은 별로 없으니까요. 그저 어떤 순간의 바람일 뿐.
그래서 인생은 가벼운 감성과 감정을 좀 지혜롭게 통솔하면서 감미로운 시와 노래를 부르다가도 다시 현실적 삶의 철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술은 예술일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예술을 현실로 착각할 땐 예술가도 학자도 모두 큰 아픔을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 안병욱 교수의 책 『인생은 예술처럼』처럼 살면 참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술과 현실은 60이 넘어야 판단할 수 있으니 정말 모순이지요. 그래도 100세 시대라 다행입니다. 너도 앞으로 30년 인생을 예술처럼 살 기회가 있습니다. 오늘 감미로운 이 노래를 듣고, 아름다운 캘리그라피를 연습하며, 피아노 건반을 만져보았습니다. 2020.11.20.(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