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간
일요일 오전 한 여 동창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건강 검진 꼭 받고, 복부 초음파도 꼭 받으라”, “아프면 안 돼”, 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별걸 다 참견하는 친구”가 보낸다네요. 하하. 비는 끝없이 내리고, 코로나도 아직 안심할 수 없고, 더구나 우리 동창들은 늙기까지 해대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이것저것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너는 감사의 답글을 보내고 속으로 “난 아직 젊어, 난 괜찮아”하고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오후 1시 걷기에 나섭니다. 우선 식사를 챙겨야죠. 인근에 최근 알아 둔 정원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바로 옆자리에 60대 아줌마 3분이 소주를 곁들여 점심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남의 이야기라 안 들어야 하지만, 한국말이라 저절로 들려왔습니다. 그 3명의 언어에서 공통인 것은 ‘그 인간’이라는 말이었어요. 3명 모두 남편과의 관계가 멀어진 모양입니다. 자식들 때문에 연락은 하지만 다 별거 중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남편들은 다 ‘그 인간’이 된 모양입니다.
너는 집사람이 40대에 먼저 가 해로(偕老)하지 못해 저분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사랑하고, 자식 낳아 잘 키워 60 넘도록 같이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게 너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다른가 봅니다. 황혼까지 같이 행복하게 사는 분은 별로 없고, 대부분은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키며 살았나 보네요. 여러 원인이야 있었겠지요, 술, 바람, 놀음, 사업 실패 등등.
점심을 배불리 먹고 식당에서 나와 걷는데 날이 너무 더워 숨이 헉헉, 마스크를 쓰니 더 헉헉, 그래서 또 버스를 타고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딱히 볼일도 없는데, 굳이 있다면 세상살이를 보는 일입니다. 타인을 보면 너의 행복을 알 수 있기도 하니까요. 역 광장 구석구석에는 술병을 옆에 놓고 앉아 있는 노숙자, 아무 데나 누워 있는 노숙자, 보란 듯 담배를 멋지게 피우는 아가씨, 너는 대전역 꽃 시계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What time is it now? 라 묻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지금이 어느 땐디?”라고 충청도 말로 해봅니다. 그러면서 너에게 “정신 차려 이 친구야” 하고 훈계합니다.
너는 ‘그 인간’ 대신 ‘인간다운 인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지,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노력은 해 봐야죠.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선배, 동창 친구, 새 세대에게 건강과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2020.8.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