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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홍수 아이의 인생길

홍수 아이의 인생길

밤새 비가 내렸는데 아침에 또 비가 퍼붓습니다. 이따금 안전 유의 문자가 핸드폰을 울립니다. 목요일 안산으로 출근하는 날인데, 너는 평소 습관대로 대전역까지 걸어갈 생각, 8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웬걸, 몇 발짝 못가 바지가 젖어 올라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전역에 이르면 물에 빠진 생쥐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정류장으로 가 311번 버스를 탔습니다. 아침 등교와 출근 시간이라 버스는 만원, 그래도 학생들이 한자리를 비워놓았네요. 버스 창문에 부딪는 빗방울이 시원스러운데, 버스는 정해진 코스로 가지 않고 우회합니다. 지하 차도 침수 때문이라네요.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안전하게 대전역에 도착했습니다. 열차를 기다리는데 15분 연착, 철도 부분 침수 때문이랍니다. 정해진 시간보다 10분 늦게 수원에 도착했습니다.

먹을 것을 해결한 다음 전철을 타고 상록수역으로, 거기서 또 버스로 학교에 갑니다. 날씨가 좋습니다. 충청도와 경기도는 기상이 너무 달랐습니다. 비가 온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경기, 하하. 우리나라 땅이 넓은 건지 비가 충청지역에만 선별 타격을 가한 건지, 아마 후자가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학생들과 도서관 견학하는 날, 약속한 그 대학도서관으로 가서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생들에게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체험시키고, 직접 도서관을 이용해보라는 취지에서 수업계획서에 미리 넣어 놓은 것입니다. 도서관 서가는 옛 모습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쾌적한데, 창문에 비친 풍경이 그림 같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서가에서 책을 꺼내 봅니다. 너도 책을 꺼냈습니다. 다음은 꺼내 본 책의 서명입니다.

김 아무개 :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게임, 판타지)

박 아무개 : 예수님이 이끄시는 삶

여 아무개 : 컴퓨터 애니메이션

김 아무개 : 신경 끄기의 기술

문 아무개 : 우리만의 이분법

조 아무개 : 관심 없음

제갈 아무개 : 오버워치 아트북

그리고 너는 ‘루터와 종교개혁’(김덕영)을 꺼내 보았습니다. 대략 살펴보아도 학생들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반은 발달이 좀 더딘 특수반 학생들이라 컴퓨터, 마법, 아니면 심리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구적이라거나, 현실적이라거나, 진로 탐색이라거나, 이런 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위에 적은 책들도 수업에서 선생이 시키니까 뽑아 보고 읽는 척한 것일 뿐, 스스로 자발적으로는 도서관을 잘 이용할 것 같지 않은 느낌입니다. 좀 서글픕니다. 인솔을 마치고 남은 2시간은 글쓰기 수업을 했는데요,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실천할지는 의문입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귀갓길에 오르는데, 대전 물난리 소식을 접했습니다. 서구 정림동 아파트가 침수되어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뉴스, 대전에 홍수는 정말 의외라 생각하며 대전역에 도착했는데, 일산 사시는 고향 대 선배, 이정희 박사님으로부터 안부 전화가 오네요. 2020.7.3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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