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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부지런한 베짱이

부지런한 베짱이

토요일 아침 5시 20분 집을 나섰습니다. 대전역까지 운동 삼아 걸었습니다. 비 올 바람이 살살 피부를 스치며 가끔 분무처럼 잔 비를 뿌려줍니다. 시원한 기분으로 약 2km를 걸으니 땀이 송골송골. 6시 20분 서울행 무궁화호를 타고 수원으로 갑니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위례 복정역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즐거운 토요일, 위례에서 설레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어린이기자단 프로그램에 자칭 아나운서 겸 사회자, 도서관 할아버지로 등장! 하하.

아홉 시 반, 노란 위례 스토리박스에 찾아가니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기자들도 하나둘 모여듭니다. 곧 어린이들과 네가 맡은 녹음 대본을 맞춰 읽어봅니다. 초등 3학년부터 5학년, 어린이들이 참 똘똘합니다. 언어 능력이 좋아 어른이 쓴 대본을 잘 소화해냅니다. 너의 말이 어린이의 말로 자연스럽게 발현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이 할아버지도 10살 전후 어린이들과 제법 통할 수 있다니 그래서 너는 싱싱한 젊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나 봅니다. 녹음 2꼭지, 11시부터 12시까지 임무를 완수하고 함께 박수, 삶의 희열을 느껴보았습니다.

맛있는 고급 순대국밥으로 위장을 장엄하고 좀 쉬다가 수서역에서 충북 오송행 고속 열차를 탔습니다. 세종 Y형의 저녁 초대 때문입니다. 특별한 일은 없으나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놀자는 Y형의 제안은 언제나 기쁨 그 자체. 수서 출발 40분 만에 오송에 이르렀습니다. 겨우 1분 연착, 연착 정밀도가 매우 높아졌습니다. 예전엔 30분, 1시간도 연착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하하. 6번 출구로 나오라는 문자를 받고 가니 Y형이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Y형의 차는 SOUL. 막내딸 차를 선물 받았답니다. 효녀임을 방증하는 차, 너도 1월 말, 아들에게서 소나타를 선물 받고 기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소나타는 너에게 젊음의 기동력을 제공하고 있죠.

조치원 어딘가 연꽃 논을 돌아보고 세종에 가는데 비가 제법 내립니다. 첫 마을에 이르니 장대비로 바뀌네요. 비 오는데, 물 수(水)자 수박 한 통 사 들고 들어가 형수님을 만납니다. 회사를 인연으로 40년 전에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우린 성씨 다른 일가친척이 되었습니다. 하하. 식사, 음주, 대화로 밤 깊도록 놀다가 깨어보니 일요일 9시 30분, 동생 대접 잘 받고 귀향하며 어제와 오늘 너의 행동을 상기하니 문득 베짱이가 떠올랐습니다. 베짱이는 민속적으로 게으르다고 하는데, 집에 와 베짱이를 검색해보니

“메뚜기목 여치과에 속하는 곤충. 원산지는 아시아이며, 들녘의 풀밭이나 길가에 서식한다. 크기는 약 3cm~3.6cm이고, 식성은 육식이다. 보편적인 색깔은 녹색이며, 몸집이 작고 날렵하여 잘 날아다니는 것이 특징이다.”(다음 백과). “베짱이의 울음소리는 베를 짜는 베틀이 움직이는 소리와 비슷하다 하여 중국에서는 ‘직조충(織造蟲)’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했다. 베짱이는 동화 속에 부지런한 개미와 달리 게으름을 피우는 곤충으로 등장하여,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벌레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하, 그렇군요, 너는 여름에 놀러 다닐 땐 스스로 베짱이 같다고 자책했는데, 베짱이는 게으른 생명체가 아니었네요. 날렵하게 날아다니며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육식 곤충이라는데, 너 같으면 차라리 그 멋진 초록빛 의상을 뽐내며 맑은 참이슬이나 먹고 지낼 것 같은데, 보기 보다 참 다르네요. 그래서 오늘은 베짱이가 게으르다는 속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 베짱이는 날렵하게 풀 섶에 날아다니는 일종의 nomad라는 것, 이러한 fact를 알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너는 마치 베짱이처럼 위례로 세종으로 날아다니며 고기도 먹고 참이슬도 먹은 부지런한 베짱이이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사실을 확인한 다음에는 현실에서 두둑한 배짱을 가져도 좋겠죠? 하하. 2020.7.2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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