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 전문가
집안 시멘트 뜰이 너무 삭막하여 꽃나무로 좀 치장하려는데, 이것도 돈이 제법 드는 일입니다. 저의 경우 다육 식물은 살리는 데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이들은 물도 필요가 없고,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하는 밖에 있어야만 살아나더라고요. 물은 싫어하지만 비를 맞는 건 상관없는 것 같고요. 그래서 선인장류는 3분(盆)밖에 안 되지만 집안에 모시지 않고 밖에 방치합니다. 그런데 작은 다육 화분 3개가 마당을 풍요롭게 하는 건 정말 역부족이에요.
그래서 5일 전, 역전시장을 지나다가 꽃봉오리가 여럿 맺혀 있는 백합 세 포기를 샀습니다. 아주머니는 저에게 꽃 색깔을 선택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합이니 당연히 흰색을 사야죠, 했더니, 아주머니는 백합의 우리말은 나리인데요, 백합은 흰 白 자가 아니라 일백 百 자에요. 분홍색도 있으니 고르시라는 겁니다. 저는 아 네, 하며 순간 무식을 느꼈습니다. 백합은 당연히 흰색일 거라는 연상이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 꽃 장사를 하는 그 아주머니의 지식이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구근식물이며 겨울에도 뿌리가 살아 1주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면 내년에도 꽃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백합도 햇빛을 좋아하니 밖에 두라는 말도 잊지 않네요.
세상에는 분야별로 전문가가 다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아는 척 해봐야 전문가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촉새처럼 아는 척 나서지 말고 겸손해야 하나 봅니다. 백합을 집 시멘트 마당에 배치하니 부피가 작아 별로 풍요롭지는 않은데, 장맛비가 내립니다. 가끔 햇빛도 쨍쨍 받습니다. 5일 만에 꽃봉오리들이 더 크게 부풀고 있습니다. 내일쯤엔 분홍색 백합이 웃어줄 것 같습니다. “백합 향기 그윽한 이때”, 예전 흔히 결혼식 사회자가 쓰던 말인데, 전에도 7월에 결혼식을 더러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2020.7.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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