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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두부와 부추

두부와 부추

大烹豆腐瓜薑菜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이며

高會夫妻兒女孫 최고의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와 만나는 것이다.

경기도 과천 추사박물관에서 본 글입니다. 추사는 이 열네 글자를 추사체로 남겨놓았습니다. 매우 가정적인 내용입니다. 2014년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 출장 전시한 내용을 해설한 2014년 판 간송미술관 도록 『澗松文華』에 보니 이 글은 추사가 지은 시가 아니라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동리(東里) 오영잠(吳榮潛, 1604-1686) [국가문화유산 포털에는 吳宗潛으로 나옴]의 시 중추가연(中秋家宴)의 일부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추사는 이 두 줄을 큰 글씨로 쓰고 그 양편 여백에 작은 글씨로 『史記』와 『孟子』에서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이 글에 대해 부연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此爲村夫子第一樂上樂 雖腰間斗大黃金印 食前方丈侍妾數百 能享有此味者幾人 爲 古農書 七十一果 이는 촌부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큼 큰 황금 도장을 차고, 커다란 연회 테이블에 음식을 차리고 도우미가 수백 명이 있다 해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古農을 위해 쓰다 71세, 과천사람.

저는 이 해설 부분은 별도로 다른 종이에 쓰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 양 여백에 작은 글씨를 써넣어 너무 꽉 찬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이 작품은 추사가 중국의 옛글에서 좋은 내용을 가져와 본인의 필체로 써서 지인에게 선물한 것인데, 지금 간송미술관에 남아 있습니다. 과천 추사박물관에 있는 것은 복제본이고요. 두부와 부추 이야기를 하려다가 문헌을 찾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관련 문헌은 『澗松文華』 238-239쪽, 『추사박물관』 72쪽,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입니다.

어제 매형이 부추를 또 많이 주셨습니다. 주셔도 매번 절반도 못 먹고 버려 미안해 죽겠는데, 그래도 또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잡풀이 섞인 부추를 잘 다듬어 놓고, 두부를 한모 사 왔습니다. 그리고 부추와 두부는 냉장고에 잘 넣어 두고, 그냥 김으로 저녁을 먹고, 글 한 편 쓰다 잠을 잤지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이런 날은 왜 구수한 된장국 생각이 나는지요. 어제는 부추와 두부로 국을 끓일 생각은 아예 못 했는데, 아침에 갑자기 된장국을 끓이고 싶습니다. 냄비에 된장을 2수저 풀고, 두부를 썰어 넣고, 다시다를 넣고 가스 불을 켰습니다. 국물이 끓을 즈음 파와 부추를 듬뿍 썰어 넣었죠. 한 1분 있다가 불을 끄고 국을 퍼서 어제저녁에 해 둔 기장, 보리, 쌀 혼합 밥을 한 그릇 먹었습니다. 두부 부추 국과 먹으니 맛이 참 좋네요. 하하. 그래서 추사의 작품을 생각하고 이렇게 찾아보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2020.7.1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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