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궁남지에서
궁남지가 많이 알려진 지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궁남지란 백제 사비성 왕궁 남쪽에 조성했던 인공 연못이랍니다. 작년 7월 복지관에서 단체로 부여에 가서 그 너른 연꽃밭을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땐 실버들이 단체로 같이 다니느라 그곳을 너대로 감상하지 못해 아쉬움이 좀 남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이 연꽃 필 무렵이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코로나로 인해 축제는 하지 않지만, 관광은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토요일, 일주일 이상 세워둔 자동차를 몰았습니다. 10시 20분에 출발하여 먼저 논산 탑정호에 가 보았습니다. 탑정호는 호반의 소풍 길로 가면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어 그냥 호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어서 내비게이션에 부여 궁남지를 찍고 달렸습니다.
정오가 약간 지나 궁남지 연꽃 단지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점심으로 연잎밥을 먹을까 하고 전문 식당에 들르니 1인분은 안 팔아요. 혼자도 서러운데 밥조차 안 판다니! 연잎밥은 포기하고 소머리국밥, 그 집은 손님이 없어 혼자라도 환영한답니다. 국밥이 맛이 참 좋습니다. 맛집 같은데요, 연잎밥은 1만 5천 원인데 국밥은 8천 원, 돈도 아끼고 맛도 좋으니 오히려 잘 된 셈이네요.
서서히 연꽃 필드로 나가봅니다. 푸른 잔디 필드로 나가는 골프선수보다 연꽃 필드로 나가는 너의 기분이 더 좋을 것이라 여기며 폭넓은 연잎과 탐스러운 꽃봉오리에 너의 얼을 바칩니다. 뜨거운 볕, 옅은 구름, 이리저리 징검다리를 자유롭게 건넙니다. 혼자이기에 혼자 다니는 환희, 자유, 바로 이 맛이죠. 한 곳에 이르니 수련인데 연잎이 넓어도 너무 넓네요. 경상도 말투의 젊은 한 쌍도 이런 식물 처음 본다며 감탄하네요. 수련이 마치 호텔 연회장에 차려놓은 원형 테이블 같습니다. 작년엔 보지 못한 정경에 감탄을 남발합니다. 연꽃인데 노랑 꽃도 있고, 보라 꽃도 있고, 사람들도 모두 신기해하네요.
오후 3시 더워서 오래 버틸 수 없고, 버텨도 안 됩니다. 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지는 법, 연꽃과는 매년 만나지만 매년 또 헤어져야죠. 그래야 나중에 더 반갑고요. 며칠 전 어떤 유튜브 강의에서 4차산업혁명에 대하여 들었는데요,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면 생명 연장도 가능하다 했습니다. 인체에 새로운 유전자를 계속 교체 투입하면 영생을 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과연 그게 행복할까요? 할아버지가 죽지 않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처럼 1908년을 산다면 어떨까요? 헤어졌다 또 만나면 반갑지만 계속 붙어살면 좋을 게 1도 없고 오히려 원수가 되지 않을까요?
또 육체가 살아 있을 때 뇌를 복사하여 컴퓨터에 저장해 놓으면 육체가 죽어도 그 사람의 뇌가 살아 있어 컴퓨터 인공지능으로 두뇌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네요. 그렇게 되면, 후손들이 어디 무서워서 살겠습니까. 컴퓨터를 켜면 돌아가신 어른들이 나타나 자손의 생활을 간섭할 것이니 자손이 어찌 편안하게 살 수 있으리오? 그러기에 과학은 인간이 편하게, 인간답게 살 정도로만 발전하면 좋지 않을까,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벌써 살벌한 감시사회가 되어가고 있잖아요? 오늘 연꽃을 만나고 헤어진 짧은 여행은 참 행복했습니다. 2020.7.1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