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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수원역에서

수원역에서

목요일 오후 안산에서 4시간 수업을 마치고 나니 걸음이 약간 비틀거립니다. 이럴 땐 무언가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압도합니다. 전철을 타고 수원역으로 이동하며 생각한 저녁 메뉴는 조개 미역국. 미역국이 몸 푸는 데는 최고라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미역국은 산모를 위한 음식이니까요.

18시, 수원역에서 19시 45분 대전행 새마을 열차표를 예매했습니다. 피로감에 열차 등급도 한 단계 상향 조정했습니다. 무궁화호는 수원서 대전까지 1시간 30분 걸리는데, 새마을호는 1시간 15분, 겨우 15분 단축되지만, 승차 품질은 무궁화호보다 좀 낫습니다. 이어 롯데백화점 3층 그 미역국 식당으로 갑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조개 미역국을 주문합니다. 값은 1만 3천 원, 조개를 넣은 미역국과 반찬이 풍부하게 나왔습니다. 너는 여유 있게 홀로 식도락을 합니다. 식사를 마치니 18시 40분, 승차 시각까지 약 1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반디엔 서점으로 갑니다. 오늘은 오직 구경, 아무것도 사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또 눈에 확 띄는 게 있으면 살지도 모릅니다. 너의 경우 시간 보내는 장소는 서점이 제일 좋습니다. 서점에서는 책을 안 사도 좀 읽을 수 있습니다. 신간을 살펴 머리말이라도 읽으면 약간의 보람도 느낍니다. 그런데 포식한 후라 그런지 머리말 읽을 생각이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저기 매대에 있는 책들을 살펴봅니다. 제목을 눈에 띄게 짓느라고 애쓴 흔적들이 보이는데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벽 서가에 꽂혀있는 책에는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걸 보니 이 서점도 적자가 날 것 같은 느낌.

수원역 플랫폼에서 밤 열차를 기다리며 ‘수원역에서’라는 글 제목을 생각했습니다. 쾌적한 새마을 열차를 타고 자다, 깨다, 안락을 즐기며 앞으로의 너의 글 제목은 대체로 장소를 가준으로 수원역에서, 대전역에서, 서울역에서, 안동역에서, 갑사에서, 김유정문학촌에서, 등등 평범하게 지어 볼까, 생각했습니다. ‘갑사에서’는 예전 교과서에서, ‘안동역에서’는 노래로 많이 들어본 제목이죠? 저녁 9시에 대전역에 도착, 311번 귀가 버스를 타며 평화로운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 천지간의 삼신께 감사드립니다. 2020.7.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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