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거미
아침에 집을 청소하다 거미를 보았습니다. 거미가 전자레인지와 벽 사이에 눈에 보일 듯 말 듯 거미줄을 치고 있었는데요, 물티슈로 그걸 건든 것입니다. 작은 거미가 황급히 벽으로 기어 올라갑니다. 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지요. 그전 같으면 확 눌러 잡거나 파리채로 때려잡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웬만하면 미물이라도 생명을 죽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싫으면 잡아서 밖으로 던져버리지요.
예전에 어른들은 아침에 거미를 보면 그날 돈이 들어온다, 고 하셨습니다. 전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진짜 그럴까 하고 의심도 했었는데요, 지금 생각하니 그 말에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미물 곤충이라도 아침부터 때려잡으면 기분도 불쾌하고, 나아가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니까요. 너무 불교적인가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우린 참 행복한 생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살아 있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면 삶의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이 위험한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신체의 균형과 감각을 유지하며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자유롭게 자연을 거닐며, 생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것, 직접 모내기를 하지 않아도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는다, 는 것, 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일곱 시 아침 식사 후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던 달력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서울대 규장각에서 발행한 고전미 풍기는 달력, 2020년 6월 호에 실린 그림, 경직도(耕織圖)입니다. 그림 설명에 보니 작가는 나오지 않고, 1902년 그림인데 모내기하는 풍경이라네요. 1년 열두 달 농경 생활의 풍경이 담겨 있는 병풍에서 가져왔다네요. 지게가 두 개 받쳐있는데, 남성들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모를 심고, 아낙들이 점심밥을 이고 와서 논두렁 가에 펼치는 장면, 술병도 보이고요, 하하. 예전 농경사회의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아침에 매형이 밭에 갔다 오시네요. 참 부지런도 하지요. 언제나 부지런하게 일하는 농촌 사람들의 생활 태도가 매형의 몸에도 배어 있습니다. 정말 농자천하지대본인 것 같습니다. 농사는 생명을 살려주니까요. 어느 스님은 농사짓는 사람은 절대 노숙자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던데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엊그제 지하철에 무임승차하는 노숙자를 보았는데요, 그는 지하철에 내려서도 쓰레기통을 유심히 쳐다보며 가고 있었습니다. 농촌에 가서 일하면 좋을 텐데, 아침에 이 글을 쓰며 너도 좀 더 부지런하게 일하라, 타이르고 있습니다. 2020.6.2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