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에너지
위치에 따라 에너지가 다르다, 이건 중학교 때 배운 지구 중력에 기초한 물리의 법칙입니다. 쉬운 예로 수력발전을 들지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원리를 이용하여 수차를 돌려 전기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물레방아도 이 위치 에너지를 이용한 것이라고요. 하하 이걸 누가 모를까?
엊그제 화요일, 온라인 강의 녹화 후 모처럼 삼각산 화계사 뒤 계곡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초봄의 나뭇잎들이 산비탈을 여린 초록으로 수놓고 있는데요, 맑은 계곡물이 돌돌 흘러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물은 참 겸손하구나, 낮은 곳으로만 가니, 스마트폰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으며 마치 관세음처럼 그 맑은 물소리를 봅니다. 까마귀가 발성 연습을 하는지, 아, 아, 효과음을 넣어줍니다. 예전엔 까마귀 소리를 재수 없다고 했는데 이제 그런 인식은 옅어진 것 같습니다. 한참 동안 바위에 걸터앉아 봄의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이 봄에 맑은 계곡물을 보고 위치 에너지를 떠올린다는 건 어쩌면 비감성적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감성과 비 감성을 공유하고 있어 현실을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성에 너무 치우치면 현실을 살기 어렵고, 너무 무디면 멋없는 사람이 될 것이니 아름다움을 보면 호들갑을 떨다가도 엄연한 현실을 살기 위해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야 합니다. 아, 그런데 항상 본연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 이것도 위치 에너지의 작용이 아닐까? 물리에서만이 아니라 이성에서도 언제나 인간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 이것도 정말 좋은 위치 에너지겠다, 이런 어린이 같은 생각을 하며 하산했습니다.
화계사 법보 3/4월호 다섯 권을 가방에 넣고 차를 몰아 영등포로 갑니다. 지난 3월 15일 아들 며느리 손주가 새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 보지 못했거든요. 아이들이 퇴근 전이라서 일단 차에서 기다립니다. 그 사이에 관리소에 가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단지 정원과 놀이터를 이리저리 다니며 감상합니다. 도심인데도 공기가 쾌적하고 위치가 괜찮아 보입니다. 다섯 시에 아들이 와서 아파트에 들어갔습니다. 10층, 시야도 그런대로 좋고, 예전의 아파트보다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아들 며느리 손주 다 모여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이 위치에서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대신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사랑한다.”가 더 진리일 것 같습니다. 이 좋은 위치에서 언제나 충만한 지혜의 에너지가 샘 솟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0.4.10.(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