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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징검다리

징검다리

오늘도 산책하다가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디딤돌의 간격이 20cm 이상이라 보통 걸음으로는 안 되고 한발 한발 멈추며 걸어야 합니다. 그때 다시 균형을 잡고 조심해서 건너야 발이 빠지지 않습니다. “긴 머리 소녀”라는 노래 가사가 떠 올랐습니다. “조심조심 징검다리 건너듯”.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꽃잎이 하나둘 떠내려가는 대동천, “벚꽃 엔딩” 노래도 떠오릅니다. 입으로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귀로는 비틀즈의 음악을 듣습니다. 그들도 나이가 많을 텐데, 이미 타계한 사람도 있다는 데 노래는 청년의 목소리입니다.

잡화점에 들러 컴퓨터에 꽂아 사용하는 스피커를 하나 샀습니다. 음악과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노트북 내장 스피커가 약해 듣기가 불편해서입니다. 집에 돌아와 새로 산 스피커를 꽂고 송가인 노래를 들어 봅니다. 소리가 훨씬 맑고 좋습니다. 플라톤 아카데미의 인문학 강의도 들어 봅니다.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을 중심으로 톨스토이 문학 사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발음도 한번 안 틀리고 강의를 참 잘하시네요. 50분 동안 그 소설의 핵심을 잘 짚어주었습니다. 순간 바로 이런 강의가 좋은 북 큐레이션이라 생각했습니다. 책의 맥을 짚어주는 강의, 방대한 책에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멋진 강의, 질문을 받지 않는 점은 아쉬웠지만요.

삶에는 징검다리도 필요하고, 섶다리도 필요합니다. 강을 건너고 섬을 잇는 커다란 다리도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도 두 다리가 있는데요, 우리는 두 다리로 저 많은 다리를 건너다닙니다. 우리 다리든 징검다리든 강 다리든 섬 다리든 다리가 있어 다리를 건너니 삶이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오늘 징검다리를 건너며 느낀 우리 다리들의 기능과 역할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강의에서 언어는 소통의 도구로 불완전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말이 많으면 진정한 소통이 안 된다는, 눈빛이 더 진정한 소통방법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톨스토이가 생각한 소통의 의미를 들으며, 행복하려면 죽음을 기억하라는 사상을 들으며 저는 순간 석가를 떠올렸습니다. 대문호 톨스토이, 하지만 부처님이 이미 2600년 전에 깨달은 일 아닌가, 후인들의 깨달음은 언제나 부처님보다 한 수 아래인가, 톨스토이가 50세 넘어 행복의 길을 알았다니 그것도 위대한 일이겠지. 오늘 식목일, 한 그루 나무를 심어야겠다. 2020.4.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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