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필 무렵
지금은 사월입니다. 음력으론 아직 3월이지만요. 예전에는 음력 기준으로 살아 ‘춘삼월’이라는 말이 있었고, ‘춘삼월 호시절’이라는 말도 있었는데요, 아마 빈곤했던 그 시절 추운 겨울을 지나 따스한 봄이 오니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모든 생활 수준이 월등히 향상됐고, 계절도 양력 기준이라 이제 그런 예전 말을 잘 쓰지 않나 봅니다.
요즘은 꽃의 계절, 모든 식물이 꽃과 잎을 피워 그들의 호시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복사꽃을 보았습니다. 예전엔 복숭아꽃을 왜 복사꽃이라 하는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의문은 사라졌습니다. 너무 귀에 익어서 그런가 봐요. 한자로는 도화인데요, 복숭아 도(桃)자, 꽃 화(花)자입니다. 박목월의 시 ‘산도화’는 너무 유명해 지금도 수능 국어영역의 출제 대상입니다. 오늘 복사꽃을 보고 온갖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도연명의 무릉도원, 무속인의 복숭아 대, 천도복숭아, 개복숭아, 식당 이름 ‘복사꽃 필 무렵’까지. 복숭아는 인간의 문학적, 민속적, 세속적 의미를 듬뿍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당이 사용하는 ‘복숭아 대’는 젊은이들에게는 좀 생소할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예전에는 무당이 굿판에서 악귀를 쫓을 때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손으로 잡고 흔들어대며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 주문이란 것은 일정하지 않아 상황에 따라 콘텐츠가 달라졌지요. 무당의 주문은 불경과는 달리 적절한 상황 반영이 필수인 것 같습니다. 일종의 ‘상황 문학’이라 할까요? 약간의 창의성이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굿은 민속 무형문화재가 되었나 봅니다.
이꽃 저꽃, 이 풀, 저 나무, 우리 생활과 관련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이 있고, 약학이 있고, 문학이 있고, 민속학이 있습니다. 국어국문학과에 무속을 전공한 교수도 더러 있습니다. 민속학자죠. 코로나로 정지된 듯한 이 화사한 봄날, 우리는 그래도 저 자연의 아름다운 생명력을 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오늘 머위 나물을 초록색 그대로 데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돼지고기 수육도 만들었습니다. 식당 ‘복사꽃 필 무렵’에 가지 않고도 오늘 약초 같은 머위를 먹고, 단백질을 먹고, 또 4주 차 강의 녹화를 준비합니다. 2020.4.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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