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위한 공상
연습에도 기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운동, 악기, 노래, 영어, 한문 등 한이 없습니다. 이 모든 연습은 습성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각자 어떤 분야 발전의 속도는 연습의 양과 질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습량이 많으면 빨리 숙달하고, 연습의 질이 좋으면 상급으로 숙달한다고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리고 이건 너무나도 빤한 상식에 속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 상식을 실천하지 못할까요? 안 할까요?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악기를 연습하다 문득 ‘질’이라는 말 대신 ‘정성’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모든 일, 모든 연습에 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죠. 악기를 칠 때 그냥 연습이니까 연습 삼아 대충 치면 연주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지식으로는 알지만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라는 연습의 제1 법칙이 있는데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운동선수에게나 해당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모든 연습에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점심을 먹고 붓글씨를 쓰려고 화선지를 사 오며 생각했습니다.
“정성을 다하자. 화선지에 글씨를 쓸 때 이 글씨로 작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자. 신문지에 글씨를 연습하면 정성을 쏟지 않을 것이니 신문지에는 먹색의 농도나 붓의 상태를 조정할 때나 쓰자. 다른 글씨도 마찬가지다. 붓 펜으로 쓰거나 볼펜으로 쓰거나 또박또박 써야 한다. 이제 책상에 서예용 멍석을 깔고 사경을 해보는 거다. 훈민정음도 불경도 쓸 것은 엄청 많다. 요즘 코로나가 시간을 허용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여 이제 매우 정성껏 쓰라.”
작심삼일을 막아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법륜 스님 말마따나 누가 하루에 100만 원을 준다면 이 작심삼일을 확실히 면할 수 있을 텐데, 하하. 자본주의 사회라 저의 머리에도 자본이 꽉 들이차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 자본이 사랑이라면 괜찮겠죠? 이름하여 ‘사랑의 자본주의 lovely capitalism’ 저는 이 주의를 채택하고 싶네요.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이러면 참 좋지 않을까요? 2020.3.16.(월).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과 문헌학 사이 (0) | 2020.03.18 |
---|---|
조명 치료 (0) | 2020.03.17 |
남의 글, 나의 글 (0) | 2020.03.15 |
코로나 인문학 (0) | 2020.03.14 |
당신의 텔레비전 (0) | 2020.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