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텔레비전
유튜브(youtube)를 번역하면 ‘당신의 텔레비전’입니다. you와 tube를 합친 말이니까요. 영한사전에는 tube를 관, 터널, 빨대, 텔레비전으로 풀어놓았네요. 그래서 당신 다음에 이들을 차례차례 배치하면 당신 관, 당신 터널, 당신 빨대, 당신 텔레비전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라고 번역하고 싶은데 your가 아니라 ‘~의’는 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텔레비전으로 ‘의’를 넣어야 우리 말이 자연스러워 제목에서는 ‘의’를 넣었습니다. 마치 I Seoul You 라 써놓고 나 서울 너라고 하지 않고 나와 너의 서울이라고 하듯이 말이죠. 사실 나와 너의 서울이라는 우리말을 영어로 조작하다가 저렇게 엉터리 영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에 쓰던 I love Seoul이 훨씬 나아 보입니다. 이는 정치적 선호에서가 아니라 어학적 합리에서 비롯합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유튜브를 많이 보며 유튜브의 어원과 의미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렴풋이 튜브를 양쪽이 뻥 뚫린 원통 관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튜브에 텔레비전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무식했던 모양입니다. 튜브가 텔레비전이라니 과거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생각나네요. 관을 통해서 방송하는 영상 음성이었나 봅니다. 사실 모든 의사전달은 사람의 인식이라는 터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동굴은 한쪽이 막혀 있어 통할 수 없지만, 터널은 양쪽이 뚫려 있어 제한적이나마 교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장단점이 공존하고 있죠.
유튜브를 즐겨 보며 저는 묘한 상상을 했습니다. 저런 개인 방송들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작은 관로이자 터널이며 빨대라고. 그래서 그 좁은 통로를 통해서는 좁은 교통밖에 할 수 없다고. 그리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들의 동굴이 저 터널을 통하여 나오는 것이라고. 이것이 속 좁은 유튜브의 결점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유튜브를 들을 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여유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정말 소통을 잘하는 도구는 없을까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허공과 같이 소통을 잘하는 도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의식과 습성이라는 동굴 속에 박혀 있어, 작은 터널을 통해서만 저렇게 유튜브로 소통을 할 수밖에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허공은 소통이 사통오달 잘 되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허공이기에 허공 속에 묻어야만 할 슬픈 옛이야기로 전락할 공산이 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우리는 좁은 유튜브 터널을 통해서라도 교통할 수밖에 없는 21세기 문명적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건 무의식 세계라고 일컫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마음의 소통은 곧 이심전심(以心傳心), 그 소통의 大家는 누구신지 다 아실걸요. 아마. 2020.3.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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