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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남의 글, 나의 글

남의 글, 나의 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칩거하느라 한 달 반 동안 이발을 안 했더니 대머리 주변머리가 길어 목덜미를 간지럽힙니다. 면경(面鏡)에 비친 꺼벙한 자화상, 그래서 오늘(3.14) 오후 2시경 달 포만에 흑기사 마스크를 쓰고 역전 그 착한 미용실에 갑니다. 어느새 주인이 바뀌었네요. 먼저 그 주인은 좀 쌩한 사람 같았는데요. 이제 분위기가 차갑지 않은 느낌입니다. 미용실에는 으레 라디오를 켜놓는데요, 오늘도 라디오 소리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려왔어요. 이런 방송도 때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발 대기시간이 좀 길어 계속 라디오를 듣게 되었습니다. 마치 예전에 과수원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배 봉지 싸는 처녀와 아낙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땐 몰랐지만 그건 진짜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었죠. 서툴지만 노랠 따라 부르기도 하고, 하하. 또 향수병?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는 우리 생활인에게 익숙한 음악프로그램, 남녀 사회자 두 명이 청취자와 전화를 연결하여 몇 마디 일상 대화를 나누고 신청곡을 들려줍니다. 그때 연결된 청취자는 마침 서점 주인입니다. 그 청취자는 직업상 책과 독서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는데요. 사회자도 호감을 보이며 맞장구를 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고 신청곡을 내보내기 전 마치 양념처럼 사회자끼리 대화를 나누네요. 책과 독서 그리고 서점에 대해서 말이죠. 한 사회자가 다른 사회자에게 물었습니다. 독서 많이 하시냐고요. 그랬더니 답변이, 자기 글 읽기도 바쁜데 남의 글을 왜 읽냐며 웃었습니다. 음악도 본인이 듣기 위해 작곡하고, 본인 음악만 듣는다네요. 한 마디로 독서에는 부정적입니다. 다른 사회자도 본인은 책방보다는 노래방에 더 간다며 맞장구 성 발언을 합니다. 둘 다 책을 읽지 않고, 서점에도 가지 않지만, 오늘 서점 주인과 통화를 했으니 한 번 가보아야겠다는 인사성 발언도 했습니다.

저는 좀 황당했습니다. 방송인도 저러하니 일반인의 독서 인식도 저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독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독서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인데 나는 어떤지?, 평생 공부하고 책을 가까이하고 있으니 남의 글을 읽는 셈입니다. 그런데 남의 글을 잘 읽지 않는 버릇도 있습니다. 주로 기증으로 들어오는 책들입니다. 처음 받으면 고마워서 몇 줄 읽기는 합니다. 한데 그런 책을 완독하지 못하는 이유는 글에 진실성이 적어 보이고, 미사여구가 많고, 글쓴이의 자기 자랑이 많은 것 같아서 입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반성합니다. 내 글도 진실성이 없는 건 아닐까? 남이 읽었을 때 좀 시시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지루해도 남의 글을 읽는 것은 나의 글을 반성하고 다듬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읽다 보면 나의 처녀 문학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의 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정말 무엇이든 정성껏 읽어야겠습니다. 오늘 이발 시간이 너에게 준 이 귀띔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020.3.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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