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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다시 오지 않을 오늘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우린 날마다 오늘이라 말하지만 언제나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은 2020년 2월 22일, 2가 다섯이 들어 있다. 묘한 날이다. 이 시대에 살아 있으니 너는 오늘을 맞았다. 이런 걸 ‘시절 인연’이라 한다. 날짜를 구성하는 인위적인 숫자도 묘하지만, 네가 고조선, 삼국, 고려, 근세조선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22세기에도 살지 못하는, 바로 오늘에 살고 있다는 게 더 미묘하다.

요즘 신종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부쩍 유행하고 있다. 어제와 오늘 이틀 연거푸 확진 환자가 100여 명씩 나와 총 433명으로 늘어났다. 온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제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대전시에 따르면 대전에서도 20대 여성이 이 병의 확진 판정을 받고 충남대 병원에 격리 치료 중이다. 그런데 서울이 주소지인 그 여성은 대전 친구 집에 놀러와 머물며 대구까지 가서 놀다 왔고, 대전에서도 노래방, PC방, 은행동, 중앙로 지하상가 등으로 쏘다니며 청춘을 즐겼다고 한다. 하필 그 친구의 집이 자양동이라 한다. 자양동은 네가 사는 가양동의 이웃 동네다. 그의 이전 동선은 시청에서 보내온 안전 안내문자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 동선으로 간 적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뜻이다. 다행히 너는 그 동선에 간 적은 없다. 그런데 이웃 동네에서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감정을 느낀다.

종일 두문불출하다 좀이 쑤셔서 오후 2시에 밖으로 나갔다. 봄날의 따스한 햇볕 속에서도 바람은 차갑다. 봄바람이 제법 강해 목도리가 나풀나풀, 코로나가 바람을 타고 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다. 거리엔 사람들이 대개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데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제법 눈에 띈다. ‘복불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너는 마스크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착용했다. 예방이 제일이니까, 고대 이집트에서도 예방의학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의학은 예방의학이 진짜다. 이번 바이러스는 인명 치사율은 높지 않다고 하는데, 벌써 약한 환자 3명 돌아갔다. 중국에서는 타계한 사람이 천명 단위로 늘고 있다.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우리 정부,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백성들은 유행병이 빨리 물러가기를 천지신명께 빌어야 하나? 모든 활동이 제한되어 3월 학교 개강도 미지수다. 천지신명께 빌 수밖에 없다.

외출한 길에 가로세로 20cm 종이 상자를 하나 샀다. 1980년에 집사람이 구해서(샀는지, 얻었는지는 모름) 벽에 걸었던 예쁜 나비 액자, 이사 올 때 그 액자 틀이 부서져 그 틀을 만들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오늘 시도해보기로 했다. 집에 와서 곧 나비 고정판을 종이 상자에 넣었다. 딱 맞다. 이제 나비 판을 종이 상자에 고정하고 투명 비닐을 덮을 생각이다. 그런데 또 투명 비닐을 구해야겠네. 묘한 날 2020년 2월 22일, 한용운의 불교 대전 1쪽을 번역, 프린트해 놓고, 난초와 고무나무 등 화초를 만져보고,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白天萬劫難遭遇)” 오늘을 이렇게 보낸다. 2020.2.2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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