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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영어와 학문

영어와 학문

영어를 잘하면 학문을 잘할 수 있을까? 너는 한국인으로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웠는데 평생 공부해도 영어에 통달하지는 못했다. 직장에 들어가 첫 부임지에 갔을 때 그곳 행정실장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네 영어 성적을 보고 이리 발령을 내달라고 했네, 하면서 칭찬 겸 격려를 해 주셔서 기분은 매우 좋았었다. 하지만 국제 텔렉스를 받아 답장을 보내고 영어로 된 서류를 검토하면서 한동안 애를 먹었었다. 그래도 그때 실무영어 능력은 좀 늘었던 것 같다.

그때(1979-1985) 영어로 일을 하면서 우리 영어교육 정말 엉터리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문법 위주로 가르치면서 말하기와 글쓰기를 가르치지 않아 실무에 영어를 사용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다행히 너는 입사 전 낭랑 18세 무렵 영어를 좀 좋아해서 김열함의 『영어정해』, 송성문의 『정통종합영어』, 유진의 『영어구문론』을 붙들고 씨름했었다. 그리고 방송영어를 계속 들었는데 처음으로 접한 방송 교재는 연세대학교 나건석 교수가 편찬한 『쓴 대로 말한 대로』 였다. 그래서 너는 그럭저럭 영어에 문리를 좀 트게 되었고 실무에 임해서도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며 그런대로 적응했었다. 그 덕분에 대학원에서도 공부에 무리가 없었다. 대학원 졸업 후엔 영어 원서를 몇 권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뜬금없이 영어와 학문과의 관계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과연 영어가 너의 학문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차라리 한문 공부에 더 공을 들였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건 어리석은 의문이다. 영어를 학문에 사용하면 사용하는 만큼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서양 학문 위주로 가르치는 우리 교육 현실에서 영어는 학문에 필수적 도구이다. 우리는 한문 교육에 인색하지만, 한문은 동양고전 인문학을 하는 데 필수 언어이다. 그럼 한글은? 한글은 우리가 영어와 한문을 배우는데 필요한 ‘기저 언어’로서 한국인으로서 세계인이 되는 길을 열어준다.

그래서 너의 결론은 언어를 잘하면 학문을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언어만으로는 안되고 언어를 학문에 활용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한문을 잘해도 이를 학문에 활용하지 않으면 언어만으로는 학문의 성과를 이룰 수 없다. 물론 영어학과 한문학은 영어와 한문 자체만으로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분야는 언어의 응용력과 창의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번 학기엔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이런 이야기도 좀 해보아야겠다.

신종 코로나 전염병 창궐로 인해(2월 24일 현재 833명 확진, 세계 2위, 한국 공포증 확산) 이번 학기 개강이 2주 연기되었다. 요즘 대학 졸업 시즌인데 대학들도 졸업식을 생략한다고 한다. 학생들 참 허전하겠다. 하지만 식은 형식이니, 그리고 졸업은 시작이니 졸업 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적인 글 한 편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20.2.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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