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도와 꽂지, 그리고 간월암
2020년 1월 두 번째 일요일, 산악회를 따라나섰습니다. 목적지는 서해 안면도, 원산도, 이제 섬이라기보다 다리로 연결된 육지, 너는 전부터 태안반도와 안면도의 솔숲을 보고 싶었는데요, 마침 좋은 기회입니다. 산악회의 장점 중 하나는 네가 개인적으로 잘 가기 어려운 곳을 부드럽게 안내해 준다는 것입니다. 전과 다름없이 아침 6시에 집을 나서 도마 네거리에서 관광버스를 탔습니다. 이번 관광단은 30여 명, 너의 중학교 동창 넷이 참여합니다. 박홍규, 김기만, 백선만, 이종권, 다 단짝들이지요. 하하. 53년 전의 친구들, 씨와 배는 다르지만, 형제 같습니다.
대전에서 안면도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스는 쉬엄쉬엄 여유를 부립니다. 유성으로 빠져 홍성을 지나 안면도, 새로 놓은 다리를 건너 원산도에 이르니 겨우 10시 반, 원산도도 개발 바람으로 군데군데 땅을 쑤셔놓아 정감이 별로 안 가네요. 우린 삭막한 신작로를 따라 걸으며 썰물로 인해 드러난 갯벌을 감상합니다. 원근 작은 섬들을 바라보며 한적한 동네를 지나 작은 산봉우리에 오릅니다. 오로봉, 해발 110m라는데 온 사방 시야가 확 트이네요.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의 풍경, 멀리 보령화력발전소 굴뚝이 보입니다. 11시 반, 좀 이른 시각인데 일행은 오로봉 정상 아래 평평한 곳에 자리를 깔고 소풍 도시락 밥을 먹습니다. 맛이 참 좋습니다.
일행은 기수를 돌려 다시 안면도로, 군데군데 펼쳐있는 겨울 산의 추운 솔숲을 바라보며 주마간산, 소나무는 역시 소나무답게 짙푸른 녹색을 과시하며 동산마다 군락을 이루며 ‘남산 위에 저 소나무’처럼 꿋꿋한 기상으로 서 있습니다.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그러기에 선인들도 송죽의 기상을 노래했습니다.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도 그중 하나지요. 윤선도는 자연에서 좋은 친구 다섯을 뽑았습니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구나”, 물, 바위, 솔, 대, 그리고 달입니다. 중학교 때 배운 누구나 좋아하고 공감하는 시조였죠. 그런데 지금 인공지능 시대, 새 세대의 시상은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아마 같은 사람 종이니 우리가 선인들의 느낌과 비슷한 것처럼 새세대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표현이 더욱 참신해지겠죠.
하루 일정인데도 시간이 많아 인솔자는 꽂지 해안으로 안내합니다. 섬에 전설을 붙여 유명한 섬, “인간은 전설을 만드는 동물”인가 봅니다. 일기도 쓰고 소설도 쓰니까요. 자세한 전설 내용은 집에 가서 검색해 보기로 하고, 일단은 할아버지 섬, 할머니 섬이랍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모습 그대로인데, 다른 것이라면 피부에 스며드는 차가운 바닷바람입니다. 썰물이 밀물로 변하여 물밀 듯 들어오는 시각, 바람도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곧 그곳을 떠나 우리가 들른 곳은 이름하여 간월암, 간월암은 문자 그대로 달을 바라보는 암자랍니다. 썰물 땐 길이 트이고 밀물 땐 길이 없어집니다. 오후 3시경인데 간월암 가는 길이 바다로 변했습니다. 우린 절에 가보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왔습니다. 절경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것이 더 인상적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너는 간월암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우리는 굴 안주로 약간의 음주를 즐기며 가무는 하지 않고 잠을 잤습니다. 이 산악회의 특징은 딴따라를 배제한다는 점입니다. 그 점이 장점이기도 한데, 너는 오늘따라 동요 ‘섬 집 아기’를 불러보고 싶더라고요. 간월도에서 굴 파는 충청도 아줌마를 보고, 굴 캐는 아낙들을 새긴 기념탑을 보았거든요. 2020.1.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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