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대신 아파트?
지난해 마지막 날 가발을 할까 하고 알아보았습니다. 국내 최초 ‘핀 없는 가발’이라는데, 그 미용실에 가서 머리통을 들이대고 본을 뜨고 견적을 받아보니 90만 원이랍니다. 그리고 가발은 우리나라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머리카락으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격도 원산지도 낯설어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외국인 머리카락을 짱구 지붕에 얹고 다닌다니, 너의 성미에 꺼림칙할 것 같습니다.
어제 동창회에 가서 친구들에게 그 가발 이야기를 꺼내 보았습니다. 다들 하지 말라 했습니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의 생각도 너의 생각과 같군요. 그러게 너의 친구들이지, 하하. 차라리 시원한 대머리를 즐기며, 가끔 목탁을 치며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반야심경이나 독송해야겠습니다. 스님은 아니라도 ‘교스님’으로 행세하고 있으니까요. 2개월에 한 번 서울 삼각산 화계사 간행물 <화계>에 화계 칼럼을 쓰고 있으니 명과 실이 같기도 합니다.
점심으로 가정식 백반집에 가서 청국장을 사 먹었네요. 가격은 6천 원인데 맛이 참 좋습니다. 오는 길에 또 다이소에 들러 장식용 시트지와 플라스틱 소품 상자를 샀습니다. 요즘 헌 방을 새 방으로 조금씩 천천히 꾸미고 있거든요. 우중충한 부엌 찬장 문에 하얀 시트지를 붙이고, 지난해 달력 그림을 오려 벽에도 붙이고, 플라스틱 상자에 벼루와 먹, 수채화 물감 등 자질구레한 문방구를 넣으니 좀 깔끔, 하하. 그래도 아직 덜 끝났습니다. 마음의 변화에 따라 너는 장식을 계속할 것입니다. 너의 장식이 너의 마음을 꾸밀 수도 있으니 일종의 상부상조, 살아 있는 한 너는 상부상조를 계속할 것입니다.
저녁 6시경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1월 1일 며느리와 손주와 통화를 했는데, 그때 손주 도윤이가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며느리가 일러 주는 대본을 정확히 연기해 무척 기특했는데, 오늘은 그때 통화를 못 했다며 아들이 목소리를 들려주네요. 1월 말 또는 2월 초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답니다. 대출로 아파트값을 마련해야 한다니 아비로서 참 미안하네요. 그렇게라도 서울서 집을 마련한다니 좋기는 한데, 네가 가발을 포기했으니 적지만 그 돈이라도 몇 배 하여 보태 줘 볼까 생각 중입니다. 2020.01.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