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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흙손과 책손

흙손과 책손

흙손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책손’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흙을 만지면 흙손이고 책을 만지면‘ 책손’이니까요. 흙손의 실제 사용 사례에서는 좀 뉘앙스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전에 농경사회의 일상은 흙을 만지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농사일을 하려면 흙을 필수적으로 만져야 했지요. 그래서 공무원이나 면서기나 농협 등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손톱 밑에 흙 안 넣고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었지요.

그런데 흙손은 또 하나 있습니다. 초가집을 짓거나 부뚜막을 새로 만들거나 할 때 맨손만 가지고는 정교하게 마무리할 수 없어 흙손이라는 연장으로 살살 문질렀습니다. 그러면 흙손이 지나간 자리는 손가락 자국이 없이 아주 편편하게 평정되었지요. 너도 부뚜막이나 토끼 집을 지을 때 황토를 반죽하여 맥질하고 흙손으로 반듯하게 평정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시멘트 미장도 흙손으로 다듬었지요. 그래서 흙손은 미장공의 필수 도구입니다.

너는 어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썩 잘한 건 아니지만 공부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 및 중학교 생활 통지표를 꺼내 보니 반에서 3등 아니면 4등을 했네요, 상도 제법 받았고요. 그래서 그런지 학력이 약해도 공무원이 되었고, 공기업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정학만으로는 지식의 한계를 느껴 공부를 더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늘 책을 가까이하다 보니 너의 손은 ‘책손’이 되었습니다. 책을 만지는 손, 책을 손에 들고 읽는 뭐 그런 손 말이지요.

오늘 대전으로 이사 온 지 1년 6개월 만에 책 정리를 완료했습니다. 지하 창고에 있던 책을 1층으로 다 올려 책장에 가지런하게 꽂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삿짐 인부들이 책을 종이 상자에 아무렇게나 세워 쑤셔 넣어서 1년 반 동안 책이 많이 뒤틀려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삿짐센터 인부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다 네가 정리를 늦게 한 탓이지요. 마음이 저 뒤틀린 책들처럼 구겨지는 느낌이라 좀 괴롭습니다.

책손, 생각하면 참 중요한 손 같습니다. 책을 만지는 손, 책을 사랑하는 손, 책갈피를 넘기며 책을 잘 읽게 도와주는 손, 문명을 낳는 손입니다. 오늘 책 정리를 하고, 주방과 안방의 방 꾸미기를 마무리하며 우리의 삶에는 흙손도 책손도 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 정리와 장식만으로는 너의 글방의 의미가 적고 앞으로 어린이 청소년을 손님으로 초빙하여 그들에게 책손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들의 삶과 문명에 작지만 의미 있는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너는 흙손과 책손을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요. 2020.1.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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