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컬럼

2020 희망의 속삭임

서울 화계사의 <화계> 신년호에 기고한 글

2020 희망의 속삭임

서기 2020년, 불기 2564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서기로도 불기로도 짝수 해네요. 수의 홀짝을 가지고도 선철들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홀수는 하늘의 수, 짝수는 땅의 수라고요. 세월은 해마다 홀짝을 교대하며 우리에게 평화로운 삶의 천지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빛과 천기를 받아 정신을 밝고 맑게 닦고, 땅에서 생명의 기운을 받아 신체를 역동적이고 건강하게 만듭니다. 하늘 홀수도 중요하지만, 땅의 짝수도 중요하다는 것을 정말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짝은 상대, 즉 단짝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저는 최근 구청에서 시행하는 ‘하브루타 독서토론’이라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한 학기 수료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하브루타’란 “두 명이 짝을 지어 서로 질문, 대화, 토론, 논쟁하며 진리를 찾는 교육 방법”이라고 나오는데요, 사실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가정교육 및 생활교육 방식이라고 합니다. 하브루타 독서는 혼자서 하는 독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여 읽은 내용을 짝을 지어 질문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수반합니다. 저는 여기서 짝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혼자서도 좋지만 둘이서는 더 좋을 수 있다는 의미 말이지요. 혼자서는 사색과 명상으로 정신의 내면을 갈고 닦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상 그 전후에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배우자든, 스승이든, 친구든, 도반이든 대화를 나누어야 서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희망의 대화를 나누며 서로 보살피며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 쥐띠해라는데요. 쥐띠에서 쥐는 아들 자(子)자를 쓰네요. 여기서 자(子)는 쥐라는 의미보다는 ‘아들’이라는 뜻과 함께 ‘맏이’, ‘처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2간지에 붙인 글자를 살펴보면 해당 동물을 직접 나타내는 글자를 쓴 간지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 붙이는 띠이니만큼 더 희망적이고 상서로운 의미를 택한 선인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지요. 한편 고대 훌륭한 스승님들께도 子를 붙였는데, 노자(老子), 공자(孔子), 맹자(孟子), 순자(荀子), 묵자(墨子), 한비자(韓非子),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송시열의 문집 『송자대전(宋子大全)』이 유명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위대한 子가 우리 보통사람에게도 다 있습니다. 女子, 男子 말이죠. 하하.

이제 경자년 상서로운 새해를 맞으며 우리는 스스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불자들은 그런 방법을 더 쉽게 터득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佛者)는 위대한 깨달음의 스승 불자(佛子)를 지향하니까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대화를 통하여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게 중생을 교화하셨다고 우리는 전해 듣고 있습니다. 불교 경전은 부처님과 제자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대화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BC624~BC544) 부처님은 서양 합리주의 학문의 선각자 플라톤(BC428~BC348)의 대화록보다 200여 년이나 앞서 8만 4천 법문, 위대한 행복의 대화록을 남기셨습니다.

새해 2020년 짝수 해를 맞아 저는 짝수의 의미를 살려 불자들 모두 불심의 대화를 나누고, 위대한 스승을 뜻하는 자(子)의 의미를 새겨 불자(佛子)에 한 걸음 다가가는 생활을 실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를 위해 불자(佛者)들도 짝을 지어 경전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하브루타 독서법’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브루타’는 유대인의 가정교육, 생활교육, 독서교육의 방법이지만 서양의 공부방법도 좋은 점은 받아들여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세계 시민의 태도라고 생각되어서요. 스승님과 도반들이 함께 경전을 읽으며 그 내용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이 시대 불자들의 평생교육에 매우 유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불교의 경전 독송과 대화, 그리고 이를 통해 확고하게 수립한 불교 신앙은 우리의 앞날에 희망을 몰고 올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듣기 좋은 서양 노래 “희망의 속삭임”을 불교적으로 두 단어만 바꿔 우쿨렐레로 연주하며 힘차게 불러 보렵니다. 불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수필/컬럼 >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門)과 문(問)  (0) 2020.03.03
자유 사서의 고민  (0) 2020.03.02
노벨상과 신 포도  (0) 2019.10.13
투명의 배반  (0) 2019.09.26
여어득천  (0) 2019.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