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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투명의 배반

투명의 배반

엊그제 ‘투명우산’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며 ‘투명’은 밝고, 공개적이고, 정당하므로 모든 생활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오늘 나무위키에서 투명이 정반대의 뜻도 있음을 알고 놀랐습니다. 나무위키의 설명을 요약하면

투명인간이란 “투명해서 눈과 카메라 등에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창작물에서 투명화는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며, 투명인간은 평소 자신을 구속하던 도덕과 규범 등에서 벗어나 충동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문제아로 설정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은 타인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염려에 의해 행동이 규제받지 않는 인간”이다. 발췌해서 그런지 문장이 매끄럽지는 않네요.

이 의미요약을 보면 무슨 말이든지 사람들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상식적으로 모든 것이 투명하면 좋은 줄 알았는데, 의미를 달리 설정하면 본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심지어 정반대의 뜻으로도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서 법은 정의를 실천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을텐데요, 법의 취지가 아무리 정의롭고 공정하다 해도 사람들이 입법 취지와는 정반대로 이용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가까운 예로 올해부터 강사법을 적용하는 대학들이 강사를 대거 퇴출한 일이 있습니다. 일용직에 불과해 고용이 불안한 시간강사의 고용안정 및 교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 주자는 법인데, 대학들은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강사를 별로 채용하지 않고, 있던 강사도 대거 퇴출했습니다. 또 같은 국가적, 사회적 문제를 두고도 정파에 따라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정치인들의 ‘내로남불’도 그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투명’이라는 같은 글자를 두고도 ‘순수한 투명’과 ‘불순한 투명’이 있다는 것을, 정직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는 사람들이 항상 손해를 보는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문제는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힘(권력)이 없으니 이 ‘투명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우리 사회는 지금 양심의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2019.9.2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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