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학교
이 말 오래간만에 들었네요. 텔레비전에서요. 하하. 어제 대전방송에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 작가가 출연해서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지요. 프로그램 제목은 “당신의 한 끼”입니다. 황 작가가 제시한 당신의 한 끼는 소 천엽, 하하. 서울에서 고학하던 대학생 시절 영양실조에 걸려 죽을 것 같아 시골집에 오니 엄마가 무덤덤하게 대령한 음식이랍니다. 맛도 모르고 무조건 먹었답니다. 그랬더니 곧 힘이 생기더라네요. 천엽이 좋다는 소리는 너도 예전에 들었는데 먹어보지는 못했습니다. 4개의 소 위중 3번째 위, 소 내장 양탄자? 너도 소양탕은 먹어보았지만, 세 번째 위의 양탄자를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황 작가는 가고 싶은 중학교엘 못 갔답니다. 맏딸인데 집이 어려워서 엄마가 인근 똥통중학교에도 안 보내줬답니다. 엄마가 오빠를 시켜 대필, 가정 형편상 선미를 진학시키지 못한다는 편지를 담임께 제출하니 담임 선생님은 선미가 보는 앞에서 입학원서를 찢어버렸답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을 것 같네요. 황 어린이는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혼자 공부했답니다. 검정고시를 거처 대학을 갔다니 참 대단하지요. 검정고시에 합격하니 큰 문이 하나 열리는 기분이었답니다. 네, 그랬을 것입니다. 축하, 축하.
예전엔 다들 먹고살기 어려웠지요. 황 작가는 너보다 10년 이상 젊은 분인데도 너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았군요. 너는 그래도 인근 중학교에 다닐 수 있었는데요. 너는 한 학년이 60명인 그 시골 중학교를 절대 똥통중학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입시가 있던 그 시절 대전고, 충남고, 대전여고, 대전여상, 보문고, 대전상고, 대전공전 등 소위 대전에서 좋은 학교를 잘 들어가는 명문중학교였거든요. 하하. 너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친구들도 열심히 했고요. 공부를 좀 안 하는 친구들도 매우 착하고 순진했지요.
너는 성적으로 봐서 잘하면 대전고등학교에도 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때 시련이 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도 공부를 좀 하는데 아깝다고 교장 선생님이 대전 모 공고에 장학생시험을 보라 하셨지요. 그래서 시험을 봤더니 3년간 등록금을 면제받는 갑류 장학생이 되었네요. 하지만 기분은 별로였습니다. 하하. 소위 똥통학교라고 소문난 학교거든요. 너는 그 학교에 3개월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고 하숙비도 없어서 자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검정고시에 합격했지요. 진짜 큰 대문이 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황선미 작가 이야기하다가 왜 네 이야기? 하하. 황 작가는 네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의문을 품은 그 결말 부분을 이야기하네요. 엄마로서의 소임을 다한 암탉의 죽음을 묘사한 부분 말이죠. 너는 그 암탉의 최후를 독자의 상상에 맡겼으면 했는데요, 작가는 족제비에게 잡아먹히는 암탉의 최후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사명을 다했으니 잡아먹혀도 여한이 없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대화에 나선 아나운서는 그걸 웰다잉에 비유하네요. 헐! 참고로 네가 노인복지관 소식지에 기고한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원고 전문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2019.1.9.(수).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어 보셨나요? 양계장에서 알 낳기 봉사만 하다가 생산성이 별로 없게 되자 주인에게 버림받은 암탉 이야기지요. 그러나 암탉은 폐기처분장 구덩이에서 한 오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요, 전에 닭장에 갇혀 있을 때 부러워하고 소망하던 일, 알을 품어 엄마가 되고 싶은 소망을 이룰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지요. 그런데 또 장애물이 많이 생기네요. 먹이도, 잠잘 곳도 없어 뜨내기로 먹고 살아야하는데 가는 곳마다 다른 친구들, 수탉, 다른 암탉, 다른 오리, 개에게 멸시를 당하고 쫓겨나지요. 족제비에게 잡아 먹힐까 봐 불안한 야외생활의 나날, 그래도 암탉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요. 암탉은 스스로 자기 이름을 ‘잎싹’이라고 지어요. 그러면서 엄마가 되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 하다가 찔레 덤불 아래에서 하얀 알을 발견하고는 그 알을 품어요. 그 알이 깰 때까지 품고 있지요. 알을 품는 동안 생명의 은인 오리가 저수지에서 고기를 잡아다가 대령하지요. 그러다가 드디어 알이 부화했는데 오리였어요. 저는 그 알이 찔레 덤불에 있다기에 뱀의 알일까 봐 은근 걱정을 했는데 참 다행이네요. 암탉이 오리 알을 품고 있었던 거네요. 그래도 암탉은 전혀 실망하지 않아요. 오리 아기도 암탉을 엄마라고 부르고. 암탉은 그렇게 소망하던 엄마가 되었어요. 그런데 또 살아갈 앞길이 순탄하지가 않네요. 주인댁으로 다시 들어가 다른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보려 하지만 그 마당의 가족들은 반겨주기는커녕 비난과 멸시로 가득한 가축적인 사회 분위기, 정말 인간들과 똑 닮았네요.
이 책 후반부에는 암탉이 오리 새끼를 잘 양육하며 가난하지만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되네요. 왜 인간적이냐 하면 사람이 쓴 소설이라 인간적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이지요. 닭과 오리는 태생적으로 다른데요, 엄마의 역할과 자녀의 역할을 원만히 잘 해 나가는 모습은 마치 다문화 사회의 인간적 어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자고로 인간은 그래야 하는 거죠. 모성애 말이에요. 그들도 자기들이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게 되더군요. 그리고 언젠가 오리는 오리의 곁으로 돌아가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터득합니다. 오리는 날 수 있고 닭은 날지 못하는데, 그래서 어미는 새끼를 부러워도 하며, 헤어져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만 그 모성애는 눈물겹습니다. 야생의 위험 속에서 엄마는 아기의 안전을 끝까지 지켜냅니다. 결국, 아기를 어느 정도 길러 엄마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튼실하게 되었을 때 어미는 새끼를 청둥오리 마을로 돌려보냅니다. 엄마로서의 사명을 다한 거죠. 그리고 자신은 순순히 족제비에게 잡혀 먹이가 되면서도 여한이 없다는군요.
우리 독서팀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느꼈답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인간 사회의 온갖 탐욕, 인권, 다문화, 모성애 등 모든 인간적, 비인간적 면모를 그린 것 같아요. 보면서 가끔은 눈물도 났지요. 그런데 마지막에 암탉이 족제비한테 잡아 먹히는 게 너무 잔인해요. 그래서 결말은 엄마와 자녀가 이별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후는 독자의 상상에 맡겼다면 말이죠. 하하. (정리. 이종권)
독서팀 참여자 : 김금옥, 신성희, 유경희, 이종권, 임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