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봉
우리나라에 국사봉은 몇 봉 있습니다. 국사봉의 문자적 의미는 나라의 선생님 봉우리. 하하,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국의 국사였다죠? 하하. 네가 아는 국사봉은 우선 계룡산에 한 곳 있습니다. 일명 향적산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너는 그 가까운 국사봉엔 가보지 못하고 그냥 먼 빛으로만 보고 다녔지요. 그 지역 출신인데도 말이죠.
그런데 오늘 일요일 산악회에서 전라북도 임실에 있는 국사봉에 간다네요, 글쎄. 그래서 너도 새벽에 길을 나섰습니다. 가수원 육교에서 함께 갈 친구를 만나 관광버스를 탔지요. 이번엔 버스 좌석이 꽉 찼네요. 오늘 미세먼지 나쁨 최악이라는데 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미세먼지도 아랑곳하지 않는가 봅니다. 하하.
버스는 안개 속을 달립니다. 미세먼지와 안개가 농밀하게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창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하지만 우리는 중마고우(中馬故友)인지라 아침부터 옛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벌곡 휴게소에서 명실(名實) 공한 외식(外食 eat out)을 하고, 각자 빈 도시락에 쌀밥을 받아 배낭에 넣고 다시 출발, 대전서 임실은 거리가 멀지 않아 오전 9시 40분에 도착하네요. 버스에서 내리니 안개와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가 흐릿합니다.
이번엔 좀 쉬운 길을 가기로 합니다. 지난번에 친구 따라갔다가 좀 힘들었던 터라 이번엔 안이한 길을 택한 거죠. 친구는 산을 잘 타므로 1봉에서 5봉, 그리고 국사봉까지 종주한다는 데 너는 국사봉만 오르기로 한 것입니다. 버스가 너희 귀족 그룹을 국사봉 자락에 태워다 주네요, 하하, 그런데 이곳 국사봉은 스승 사자 대신 선비 사자를 쓰네요. 곧 국사봉을 향해 오릅니다. 와, 그런데 계단식 가파른 길이네요. 중간에 전망대에서 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옥정호를 내려다 본 다음 해발 475m 국사봉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아직도 안개 속이네요. 우리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카메라를 들이대 보지만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정상에서 1시간 반을 머물며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른 점심도 먹었지요. 하하. 미세먼지가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는 점심을 달게 먹었답니다. 해가 중천에 올라오니 안개가 걷히네요. 그런데 미세먼지는 그대로입니다. 저 아래 옥정호에 붕어섬이 보입니다. 하하. 옥정호는 옥 같은 물, 붕어섬은 붕어 같은 섬이랍니다.
다시 버스가 있는 곳으로 서서히 내려옵니다. 임실에도 선돌, 암각화 등 역사유적이 있다는데, 산악회를 따라오니 그런 곳을 가보지 못해 좀 아쉽네요. 날씨도 별로고. 그래서 오늘은 문화산책을 잊어야 합니다. 그냥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현실 정치 이야기는 삼가려 하는데 주위에서 자꾸 정치경제 이야기가 나오네요. 어르신 국민이라 그런 거겠죠. 더구나 국사봉 자락에서는 정치, 경제, 서민 생활 이야기가 어울릴 것도 같네요. 위정자들이 당파적 이익보다 국민적 이익을 위해 힘써야 할 텐데요, 우리에게 요순 정치는 요원한 걸까요?
돌아오는 길, 친구가 자기 집에 가서 저녁까지 먹고 가라네요. 하하. 그래서 또 주책없이 친구의 말을 들었습니다. 친구 말은 빈말이 아니거든요. 하하. 미세먼지와 함께한 오늘 하루도 참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소화기관으로 들어간 미세먼지는 소화기관을 통과해 나오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는 방송을 믿습니다. 친구가 현미 오곡을 플라스틱병에 한 병 담아주네요. 하하. 2019.1.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