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님 화법
엊그제 수원 왕복 기차표를 사면서 너는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차표 파는 아가씨의 말이 마치 딸의 말처럼 귀에 쏙 들어왔던 것입니다. 토요일 차표는 매진이 잘 되므로 2, 3일 전에 예매를 해야 하는데 네가 표를 산 그날은 토요일 이틀 전이었지요. 그래서 마음 놓고 토요일 표를 달라 했더니 표가 몇 장 안 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표를 살 수 있어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표를 건네주며 하는 그 아가씨의 말이 색달랐습니다. “표가 몇 장 없으니 이 표 잃어버리시면 안 돼요!”
그 후 아가씨의 그 말이 너를 좀 더 신경 쓰게 만들었습니다. 토요일 날 목적지를 잘 다녀올 때까지 표를 단단히 간직하려고 신경을 썼지요. 그러지 않아도 너는 무얼 잊지 않기 위해 무척 신경을 쓰는 편인데 그 아가씨의 그 말이 너를 다시 한번 배달민족(倍達民族)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하하. 그런데 염려해 주는 그 마음, 참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 하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참 고맙군, 너는 딸이 없어 좀 허전한데 마치 딸같이 염려해 주니 기분이 참 좋군.
예전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시골 영감 서울 가는 기차놀이에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랑이하네,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어,” 하지만 지금은 시골 영감이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랑이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65세 이상이면 요금을 30% 할인해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렇게 친절하고, 딸처럼 염려까지 해주니 말이죠. 오히려 요즘은 노인들이 조심할 게 많습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트로트 전화벨, 큰 소리로 말하는 노인들의 도발적 화법은 지양해야 전통문화인 것 같습니다.
2019.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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