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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이 세상에 딱 한 마디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어느 방송 광고프로그램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언뜻 들으면 얼토당토않은 질문 같은데, 한편으로는 그럴 경우도 가정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임종에 이르러 마지막 한마디를 할 때 말이에요. 하하. 대단한 수행자가 아니면 그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임종 시에는 반짝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도 있다고 하니 그때를 대비하여 미리 한마디 말씀을 생각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흔히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다는 말을 하는데 이제는 이 말도 너무 상투적으로 들리게 되었지요. 하지만 따져보면 매우 타당한 말입니다. 2018년을 졸업하니 2019년 또 새해가 왔거든요. 이런 세월의 마디라도 없다면 인생의 보람은 무엇으로 헤아릴지, 졸업과 시작이 없다면 우리 인생살이가 너무 밋밋하고 지루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린 또 희망으로 새해를 맞습니다. 살아가는 게 희망이고, 일상을 바르게 사는 게 생활 정치라면 새해에도 정치 한번 잘하며 살고 싶은 희망을 품습니다.

 

저는 지난해 129일 어느 관광 모임을 따라 안동 하회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낙동강 상류 물길이 돌아가는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세계적인 마을이지요. 하회마을은 조선 선조 때 문신 류성룡(1542-1607)의 고향, 그가 재상으로서 직접 겪은 임진왜란의 기록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한 마을로 유명하지요. 류성룡은 당파싸움이 극심했던 당시 고위관료로 임명되어 혼돈의 정치를 바르게 잡아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의 침입에 대비해 권율을 의주 목사에,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에 임명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정읍 현감이었던 이순신을 7등급이나 계급을 높여 발탁했다네요. 지혜로운 재상이지요. 전쟁이 끝난 후 조정에서 책임 공방이 난무한 가운데서도 류성룡은 일본과의 화의를 주장했다는군요. 이를 계기로 그는 모든 관직을 박탈당해 말년을 고향에 내려와 독서와 저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때 쓴 책이 징비록이라네요.

 

징비록징비는 중국 고전인 서경(書經)징전비후(懲前毖後)’에서 따온 말로 잘못을 뉘우치고 경계하여 훗날의 환란을 대비한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7년간의 정황을 기록하고, 앞으로 이러한 참담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유비무환이라 할까요? 속 좁은 당파싸움 대신 큰 안목으로 세상을 바로 보고 올바른 화합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충정의 가르침이라 할까요? 오늘의 정치인은 물론 온 국민이 반드시 읽고 새겨야 할 희망의 고전입니다.

 

저는 고전의 중요성을 이런 점에서 찾고 싶습니다. 수많은 역사의 사례를 연구하고 반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소인배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아전인수 당파싸움을 일삼고 있는 현실정치를 보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찌 이리 비슷한지 한숨을 내쉬게 되네요. 그래서 저는 하회마을 중심의 삼신당 600년 된 느티나무에 다음과 같은 소원지를 매달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화해와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아까 이 글 첫 문단의 숙제, 세상에 단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다음 말을 하자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세요.” (화계 2019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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