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저도 용두산 등반기
아침 6시 20분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대전에 온 후 친구의 권유로 둔산산악회에서 시행하는 월 1회 등산을 따라다닙니다. 물론 바쁜 일이 있을 때는 빼먹지만요. 오늘은 바쁜 일이 없어 따라가렵니다. 가양동 동아마이스터고 앞에서 3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중앙로에서 직행 1번을 갈아타고 도마네거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도마삼거리에서만 서는 바람에 도마네거리까지 숨가쁘게 뛰어가느라 1분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사이 친구가 전화를 2번이나 했네요. 대전은 삼거리, 오거리는 그냥 두고 사거리만 네거리로 바꾸었네요. 바꾸려면 삼거리는 세거리, 오거리는 다섯거리로 해야 일관성이 있지 않을까요? 사거리를 네거리라 한것은 속설을 숭상하는 충청도 사람들의 정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네가 약속시간을 1분이라도 늦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임마뉴엘 칸트와는 달리 항상 30분 일찍 도착해야 적성이 풀리는데. 다음부터는 약속시간 전에 갈 것입니다.
관광버스를 타니 낯 모르는 분들까지 다 환영하는 미소를 보여주네요. 대전은 이런 인심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충청도 이심전심 미지근한 인심이지요. 친구와 같이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으니 친구는 옆자리 일행과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웃고 즐기고 있네요. 음담패설도 섞고, 듣자하니 다 충청도 썰렁 개그같아요. 하하. 너는 가만히 있다가 가끔 그 썰렁개그를 거들어주었습니다. 음담패설은 못 거들었고요. 하하. 곧 옥천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대원들은 아침식사를 차립니다. 밥을 해가지고 가서 밖에서 간이 밥상을 차려 외식을 하고 있으니 휴게소 사람들이 보면 무척 싫어할 것 같네요. 휴게소에서 사먹지 않고 밥을 가지고와서 먹고 휴게소에게는 오줌만 보태주는 셈이니까요. 하하 미안해지네요. 그러나 네가 어쩔 수는 없는거죠. 경제성을 중요시하는 이 산악회의 관습법이니까요. 하기야 회비 2만 5천원에 하루 교통비, 식비를 다 해결해야 하니 주최측에서는 매월 적자라더군요. 부족부분은 회장께서 부담한다네요. 그분도 베풀고 사는 분인가봅니다.
다시 버스를 타니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 등산 일정을 안내하네요. 마산 저도는 연육교 다리로 연결된 섬인데 거기 가서 해발 202.7m 용두산을 등반할거라면서 엊그제 히말라야에서 토네이도를 만나 유명을 달리한 한국 산악인 5명, 네팔인 4명에 대한 애도를 빼 놓지 않는군요. 그러게 산은 위험하지요. 더군다나 히말라야에 아무도 가보지 못한 새 등산길을 개척하려다 그랬다니 참 뭐라고 해야할지, 우린 그저 마음으로 애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는 예로부터 그런 위험한 등산은 왜 가는지를 이해를 못합니다. 너에게는 유목민의 탐험정신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그 어려운 일, 탐험가들은 그런 일에 몸을 던지지요.
다시 성주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곧장 마산으로, 11시 20분에 저도에 도착했습니다. 각자 뿔뿔이 삼삼오오 산길로 들어섭니다.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해안의 산길을 걷습니다. 길 이름은 <저도 비치로드>, ㅎㅎ, <저도 해안 산책길> 정도로 한글로 쓰면 안되나 하고 마음속으로 도로명에 대해 시비를 걸어봅니다. 어디에서나 외래어 쓰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풍조가 전국적으로 약 50년 이상 확산, 고착되어온 것 같습니다. 대도시 간판의 절반은 외래어입니다. 아파트 이름도 절반은 외래어 같고요. 학교도 그렇습니다. 당장 너의 동네 고등학교 이름도 동아공고에서 동아마이스터고로 바뀌었거든요. 이 언어의 혼돈을 너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어 이를 서러워하며 친구와 같이 바닷가 굴곡진 산길을 걷습니다. 이윽고 가파른 길, 친구는 잘도 오르는데 너는 헉헉 처지기 시작합니다. 할수 없이 친구와 간격이 벌어집니다. 너는 너대로 속도조절을 합니다. 해발 202m 절대 무시해서는 안되겠네요. 겨우겨우 쉬엄쉬엄 오르니 친구가 정상에서 전화를 하네요. 전화를 받고도 너는 20분이나 지나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하하. 산에서 도시락을 먹습니다. 친구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소주 3잔을 마시고 친구에게 엊그제 서울대에서 산 수건 하나를 선물했습니다. 이 선물은 친구가 기쁘게 받아주네요. 어제 돈은 뿌리치더니 말이죠. 너는 친구에게 올 가을 햅쌀 80Kg짜리 두가마를 주문했습니다. 한가마면 혼자 1년은 먹는다니 양식 걱정을 한방에 덜어버리려고요, 친구가 논산평야에서 직접 농사지은 수광(秀光)이라는 품종의 좋은 쌀이거든요. 두가마를 주문한 이유는 한가마는 매형께 드리려고요. 저도 착하긴 좀 착한 편이지요. 하하. 쌀 품질 유지를 위해 납품 시기는 방아를 찧을 때마다 적정량으로 조절하면 된다네요.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잠이 깼을 땐 또 우리들의 추억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에오니 7시 30분, 곧 청국장을 덥혀 맛있는 식사를 했습니다. 친구가 준 깻잎 장아찌, 맛이 참 깔끔하네요. 2018.10.14.(일).
추신
마산으로 간다 해서 이은상의 ‘가고파’ 노래가 떠올랐지요. 그러나 미리 찾아보지 못하고 다녀와서 찾아보았어요. 노산(鷺山) 이은상의 고향이라네요. 진작 알았으면 이 노래를 힘껏 부르고 오는 건데.
가고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이은상(李殷相 1903~1982),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노산(鷺山) 鷺는 헤오라기로, 백로 로로서 鷺山은 백로가 노니는 산
작가, 사학자,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대표작은 혈조, 테니슨의 사세시, 새타령, 조선의 꽃, 남산에 올라, 황진이의 일생과 예술, 고향생각, 가고파, 성불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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