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누구나 그런 것처럼 너는 언제나 준비를 한다. 식사준비, 외출준비, 강의준비, 귀가준비, 준비는 끝이 없다. 요즘은 이사준비를 한다. 문정에서 개인서재를 도서관으로 운영하고자 했던 너의 의도가 6년이나 지나도 잘 구현되지 않아 이제 책을 싸가지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엊그제 6월 1일 금요일 송파구청 교육협력과에 가서 너의 문정인문학도서관 폐관신고를 했다. 폐관을 하는 데도 공무원들이 친절하게 대해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커피까지 대접 받았다.
이사를 준비하다보니 버릴 것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래서 법정 스님은 “버리고 떠나기”라는 수필을 쓰셨나보다. 박경리 선생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유고시집을 남겼는데, 너는 아직 그 분들의 경지에 들지는 못했다. 네 성질에 책을 버리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다. 책꽂이에서 빼 놓았다가 다시 꼽기를 반복하기 일쑤. 하지만 언젠가는 버려야 한다. 어제는 과감하게 책 몇 뭉치를 내다 버렸다. 그리고 오늘은 구청 보조금으로 구입한 책을 구청에 반납할 준비를 한다. 2015년에 보조금(2백 만 원)으로 구입한 책이 총 162권인데, 들고 가기 좋게 나누어서 끈으로 묶는다.
삶은 준비다(Life is Preparation). 다시 말해서 준비는 삶의 의미이다(Preparation is Meaning of life). 올 준비, 갈 준비, 살 준비, 버릴 준비, 너는 이사하면 또 무언가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죽음의 의미도 살아 있을 때 찾을 수 있는 거니까. 하하. 그래서 살아 있는 한 너는 어떤 의미를 찾아 다녀야겠다. 이사 가기 전에 오늘 13시 문정인문학도서관으로 아들 며느리 손주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화분에 물을 주고, 집을 청소하며,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드디어 아들 며느리 손주가 와서 함께 냉면집으로 갔다. 문정 신규 법조단지로 이사 간 그 함흥냉면집, 환경이 쾌적하고 맛도 여전해서 네가 자주 찾는 집이다. 점심을 잘 먹고 다 함께 너의 도서관으로 와서 방긋거리는 손주를 실컷 안아보고, 너의 이사 문제를 논의했다. 하하. 아들에게 엘지 제습기와 보국 선풍기를 인계했다. 무엇이든 쓸 만한 게 있으면 가져가라 했건만 그 두 개만 가져가겠다고, 그거라도 가져가 주니 참 고맙네. 하하. 2018.6.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