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이사를 위해 오늘 임대 정수기를 반납했다. 그런데 정수기를 보내고 나니 당장 물이 먹고 싶다. 그래서 슈퍼에 가서 삼다수를 한 병 사왔다. 벌꺽 벌꺽 삼다수를 마시니 다시 정수기가 생각난다. 6년이나 정들었던 정수기, 너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해주던 정수기, 하지만 이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수기를 보내니 정숙이가 생각나네. 정숙이는 예전 동창도 있었고 회사 직원도 있었다. 정숙은 도서관 벽에도 붙어있는 단골메뉴다. 하하. 그런데 그 이름이 다 맑고 잔잔하고 깨끗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은 조용한 도서관을 지양하고 떠들썩한 도서관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도서관은 여전히 정숙을 좋아한다.
정수기를 보냈지만 너는 또 다른 방법으로 깨끗한 물을 구해 먹어야 한다. 도서관을 접지만 너는 또 정숙한 공간을 조성하여 독서와 글쓰기를 계속해야 한다. 엊그제 백 교수님이 송별 차 문정동에 오셔서 식사를 사주시며 하신 말씀, “웰빙도 해야 하지만 이제 웰다잉도 해야한다.”는 그 말씀이 요즘 너의 마음을 자극한다. 이제 점차 때 묻은 심신의 잡동사니를 버리고 정숙하게 살다가 정숙하게 가고 싶은데, 이것도 또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오늘은 우선 제일 큰 종량제 봉투를 하나 사왔다. 2018.6.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