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동화라면
크리스마스이브만이 아니라 ‘오늘’은 언제나 ‘내일’의 이브입니다. 그래서 내일이 석가모니 탄생일이니 오늘은 석탄일 이브인 것입니다. 하하. 그렇지 않습니까? 너는 미세먼지 하나 없는 쾌청한 오늘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전기밥솥으로 맛있는 잡곡밥을 지어 먹고 모닝커피를 한잔 했습니다. 너는 전기솥으로 밥을 지을 때마다 쓴 웃음을 짓습니다. 밥솥 여인의 멘트 때문입니다. 밥솥에 잡곡과 물을 넣고 시작버튼을 누르면 그 여인은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잡곡, 고 화력, ㅋㅋ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 하하. ‘취사’가 맛있다고 말하지요. 취사가 맛있다니, 취사는 밥을 하는 행위인데 행위가 맛있다니. 하하. 그 제조회사에는 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는가 봅니다. 너는 그냥 웃을 수밖에. 김소월처럼 “왜 사나면 웃지요.” 하하. 결은 좀 다르겠지만요.
집을 나서는데 우편함에 우편물이 있습니다. 징검다리 휴일인데 우편물이 배달 되었네요. 너의 우편물도 하나 있네요. “행인이 임발 우 개봉이라” 우편봉투를 뜯어봅니다. 국민은행에서 동화책이 왔네요. 국민은행은 해마다 창작동화를 모집하고 엄선하여 책을 만들어 보내오지요. 아마 마케팅 전략의 일환인가 봅니다. 그런데 그 창작동화들이 의미는 꽤 있어 보입니다. 동화는 인문학이니까요. 책 제목을 보니 “토씨네 백년공방”이네요. 일단 가방에 넣었습니다. 전철에서 읽어보려고요. 이미 너의 저서 한 권과 한용운의 불교대전을 챙겼지만 이 동화도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하하.
롯데리아에서 대충 점심을 먹고 경찰병원 역으로 가 전철을 탔습니다. 스마트폰을 켜니 어제 타계하신 엘지 구본무 회장의 이야기가 나오네요. 73세밖에 안 되셨다는데 돌아가시다니, 그런데 언론에 나오는 그분의 평가가 범상치 않습니다. 물론 타계하면 다 호평을 받게 마련이지만 그분은 좀 다른 것 같네요. 재벌 총수지만 격이 없고 인간적인 분이라는, 이웃 아저씨 같은 분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네요. 정말 그랬나 봅니다. 너도 엘지 제품을 몇 개 사용하고 있는데, 앞으로 기회가 되면 더 많이 사용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엘지는 형제간에 싸우지 않는다네요. 국정농단에도 걸리지 않았고요. 참 모범적인 기업 같습니다.
너는 전철 경로석에 앉아 우선 너의 책을 펼쳐봅니다. 네가 쓴 책이지만 한참 지나고 읽으면 새삼 네가 쓴 글이 참인지 아닌지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읽어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아 안도하며 몇 꼭지 읽다가 중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아까 우편으로 받은 국민은행 창작 동화책을 읽어봅니다. 야. 이건 어른이 읽어야 할 동화지 어린이용은 아닌 것 같네요. 일단은 말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보니 의미는 심장하네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라는 말을 이용하여 우화처럼 엮었네요.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한테 공부하라, 1등하라고 잔소리하는 걸 풍자한 겁니다. 어린이는 순진하여 대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못 하지요. 그래서 엄마의 말이 스트레스가 되어 쌓인답니다. 그런데 토끼선생이 게임기 공방을 운영하는데, 어린이가 토끼한데 찾아가 게임용 귀 하나를 주문합니다. 사실 말도 안 되지만 말이죠. 하하. 귀를 주문하여 현재 막혀 있는 자기의 한 쪽 귀를 갈아 끼워 쌓인 스트레스를 흘려 보낸다 네요 글쎄. 하하. 의미는 심장한데 네가 전달력이 좀 부족해 무미건조하네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가식에 쌓이고 싸여 살고 있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다 가식이지요. 그러니 아이들이 뭘 보고 참 진리를 배우겠어요. 우선 너부터 그렇습니다. 네가 장말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입니까? 가슴에 손을 얹을 일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본인이 판단해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멋지게 사는 게 최고 선 아닐까요?
노동을 하든, 행정을 하든, 공무원을 하든, 장사를 하든, 양심을 가지고 진실하게 사는 것, 그게 참 인간의 삶 아닐까요? 부자라도 구본무 회장처럼 겸손하게, 지위가 높아도 너처럼 겸손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사는 것, 이게 인문학적인 삶이 아닐까요, 아침에 어느 스님의 텔레비전 강좌에서 너는 혼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정직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정치인은 그래도 양심적인데 한국의 정치인은? 일본의 국민들은 정직한데 한국의 국민들은? 중국의 국민들은 역사를 버리지 않는데 한국의 국민들은? 그 스님은 물음표만 던지고 말씀을 맺었지만 그 여운은 짠하게 남습니다. 한국인이 머리가 좋다고 우쭐만 할 건 아닙니다. 머리좋은 사람들이 잔머리를 굴리면 무엇이든 될 일도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오늘 석탄일 이브날 깊이 자신을 성찰해 봅니다. 2018. 5. 21(월).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달 박사와 구본무 회장 (0) | 2018.05.22 |
---|---|
석탄일 행사를 준비하는 조계사를 가보다 (0) | 2018.05.21 |
감기 (0) | 2018.05.20 |
대전 송시열 사적 (0) | 2018.05.13 |
부여 능산리 고분군 (0) | 2018.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