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동과 도서관의 역할
도서관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
도서관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와 같다. 문명이 있는 곳엔 언제나 책이 있었고, 도서관이 있어왔다. 따라서 책과 도서관은 문명의 산파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도서관 역사가인 제임스 톰슨(James Thompson)은 1977년 『A history of the principles of Librarianship』(사서직의 역사 원리)라는 그의 저서에서 사서직의 17가지의 원리를 도출한바 있는데, 그 첫 번째 원리가 도서관은 사회적 창조물이라는 것, 두 번째는 도서관은 사회가 보존한다는 것, 그리고 (중간은 생략하고) 열한 번째 원리는 사서는 그 시대의 정치사회와 융합하여야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도서관은 시대상황에 따라 명멸을 거듭해왔다. 사회가 필요로 하면 도서관이 번성했고, 사서들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전쟁, 혁명, 빈곤 등으로 사회가 불안정하면 도서관은 흩어지고 사서들은 숨을 죽였다. 이처럼 도서관은 언제나 사회와 그 운명을 같이해 왔다.
사회변동과 도서관의 체인지體仁智
“사회는 언제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은 변화한다는 사실 그 자체뿐이다.” 이 말은 상투적인 표현 같지만 정보사회론 과목을 공부할 때 처음 만나는 말이다. 지난 10여 년간만 돌아보더라도 우리는 급격한 사회변화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정보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나이 든 사람들은 점점 스마트 기술에 적응하기 어렵게 되는 반면, 신세대들은 디지털 적응력이 빨라 아기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니 디지털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Born Digital’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학자들은 사회변동의 요인을 지구환경 변화, 인구변동, 기술혁신, 정치사회문화요인 등을 들고 있는데, 이 가운데 기술발전과 인구변동이 사회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정치의 영향도 지대하다. 우리나라도 요즘 같으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평화와 도서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회변동에 따라 도서관도 적절히 체질을 개선하는 체인지體仁智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서관도 조직체질을 건강하게, 사서와 고객을 인간답게, 그리고 정보콘텐츠를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이 體仁智라는 조어는 언젠가 어느 대학의 홍보물에서 change를 한자로 體仁智로 쓴 것을 보고 알았다. 그리고 이 표현 정말 의미심장하다고 느꼈었다. 변화하되 체질을 건강하게, 마음을 인자하고 덕스럽게, 그리고 지혜를 발휘하자는 뜻이 담겨 있어서이다. 이는 인생이건 조직이건 명심해야할 삼자성어三字成語 같아 참 좋아보였다. 도서관도 꼭 이런 체인지體仁智를 했으면 좋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
몇 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와 이를 다루는 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새 시대는 정보기술 혁신에 따른 새로운 문명세계가 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회장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1938- )은 그의 책 『The Forth Industrial Revolution』(제4차 산업혁명)에서 “현재의 지식정보관련 기술혁신 속도를 고려할 때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가 사회에 나와 갖게 될 일자리의 70%가 현재 있지도 않는 전혀 새로운 일자리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마치 자기의 예측이 아닌 것처럼 에둘러 표현했지만 사실은 미래학자들, 전문가들 누구나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혁명이라는데, 컴퓨터 기술이 인간의 지능처럼,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여 발전한다고들 믿고 있다. 도서관도 컴퓨터 초창기 때의 도서관자동화를 넘어서 이미 오래 전에 OPAC을 실현했을 뿐 아니라 디지털도서관, 스마트도서관을 구현하고 있다. 앞으로 더 진전된 인공지능기술이 도서관에 적용되면 로봇 사서가 등장하여 도서관 업무를 척척 처리하고, 이용자에게 책을 읽어주며, 도서관의 안전을 지키는 등 정보서비스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서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솔솔 등장하고 있다. 가정에도 인공지능, 회사에도 인공지능, 도서관에도 인공지능, 그렇다면 그때 우리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그런데 필자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서라는 직업이 없어질 거라는 예측에 대하여 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는 바둑 왕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이서 패한 다음 한 말에 그 답이 들어 있다. “이세돌이가 진 거지 인간이 진 건 아니죠.” 정말 그렇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었으니 인간이 진 건 아닌 것이다. 좀 더 부연한다면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 해도 그 인공지능을 인간이 편리하게 활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없으면 인공지능도 필요 없다.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했을 때, 그 로봇이 밥을 먹고 배설을 하고, 아이를 낳을 것인가? 인공지능은 생물이 아니기에 그러한 우려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인간이 직접 수행하기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인공지능 로봇이나 다른 디지털 기기들이 대신하도록 하는 것, 지금 우리들이 일부 이용하고 있는 사물인터넷, 무인전철, 원자력발전소 해체 로봇, 무인자동차, 로봇청소, 도로공사 안전지킴이 등 어려운 일을 시키는 데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첨단적으로는 우주개발 프로젝트나 의료생명 프로젝트에 활용, 인간의 삶의 터전을 확대하고, 질병을 완벽하게 예방, 치료하며 수명을 연장하는 등 인간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이 오히려 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공할 무기개발, 인공지능 전쟁 등 인간을 해치고 파멸시키는 기술은 없어야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백(Ulrich Beck, 1944-2015)은 1997년 『Risk Soiety』(위험사회)라는 저서에서 근대 후기 산업사회에의 인간의 모험은 모든 생명의 자기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인공지능 기술의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들었다(이 글을 쓰는 도중에 1942년 생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8년 3월 14일 타계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사에 보니 그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 600년 내에 불덩이가 떨어져서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 예측했다고 한다). 인간의 기술이 오히려 인간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기술개발에도 엄격한 평화윤리가 필요하다.
시대가 변해도 도서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
이러한 정보기술의 급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변하지 않아야 한다.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문명발전의 어머니요, 산파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양이나 동양이나 문명의 중심에는 언제나 책과 학교, 그리고 도서관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통하여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학교와 도서관을 통해서 교육과 연구가 소통되어 끊임없이 문명을 확대 재생산하여 왔다. 따라서 책과 학교, 도서관은 인간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인간생활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지금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들은 먼저 유아용 책을 구입하여 아기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읽어주고, 좀 더 자라면 동네도서관으로, 어린이도서관으로 가고, 또 초등학교에 보내고, 중고등대학교에 보내고, 이제 교육은 문명인의 삶 그 자체가 되어 학교를 넘어 평생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교육을 빼고는 현대인의 생활을 말 할 수 없다. 도서관은 역사적으로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교육을 담당하는 곳은 학교만이 아니다. 교육은 가정, 학교, 사회가 적절히 협업해야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가정, 학교, 사회 가운데서 도서관은 사회교육의 주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가정과 학교에서 부족한 부분을 도서관에서 보완할 수 있으며, 사회에 나온 젊은 시민들도 도서관을 통하여 평생 자기교육을 실천할 수 있다.
얼마 전 2017년 11월 15일에 개관한 마포중앙도서관에 가보니 빌게이츠의 말 “어릴 적 나에겐 정말 많은 꿈이 있었고, 그 꿈의 대부분은 많은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는 글귀가 도서관 밖 돌에 새겨져 있었다. 그 돌의 다른 면에는 안중근 의사의 휘호를 번역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는 글귀도 새겨져 있었다. 이는 모두 책을 통해서 꿈을 키우고 인생을 깨달아 간다는 의미라서 우리에게 책의 중요성을 웅변해 주는 명언이다. 빌게이츠는 또 동네도서관에서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이렇게 볼 때 책과 도서관은 인간의 꿈을 키우고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이자 산실임에 틀림없다.
2000년대부터 미국인 존 우드(Jone Wood)가 동남아에서 펼치고 있는 ‘룸 투 리드(Room to Read)’운동 역시 학교와 도서관이 없거나 열악한 후진국의 교육을 지원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이사였던 존 우드 는 중국 지사에 근무하며 네팔을 여행하던 중 그곳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보고 회사를 그만두고 자선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 후 돈 때문에 우여곡절도 많았으니 현재는 세계 각국에 45개 지부를 두고 네팔, 스리랑카, 베트남 등 10여 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도서관과 학교를 지어주고 책을 보내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언론 뉴스와 『히말라야도서관』이라는 책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고, 2010년 룸 투 리드 한국 지부도 출범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동네도서관 설립 붐이 일어나 누구나 작은 도서관을 열어 지역사회의 시민소통의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이는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다.
도서관 사업은 이제 세계적인 교육 사업이 되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고 연구하며 소통할 수 있는 곳, 이것이 도서관의 본질이라 생각된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도서관은 자발적 시민교육의 장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도서관은 큰 도서관도 필요하고 작은 동네도서관도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든지 편리하게 책과 정보에 접할 수 있고, 이웃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그러는 가운데 저마다 지식과 지혜의 수준을 높임으로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곳, 이런 곳이 진정한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정보기술 발전으로 정보미디어가 변한다 해도 위와 같은 도서관의 본질과 역할은 굳건히 유지해야 한다. 다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이 필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