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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위례(慰禮)도서관

위례(慰禮)도서관

 

송파에 사니 위례에 가깝다. 차로 10분도 채 안 걸리니 같은 동네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 몇 해 전부터 위례에 신도시가 조성돼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와 있다. 교육 사회복지 문화기관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위례신도시를 관할하는 행정자치구가 3이라는 데 있다. 3은 민속학적으로는 좋은 숫자지만 같은 땅에 행정자치구의 3분은 불편한 3이다. 서울시 송파구, 하남시, 성남시 수정구. 개발되기 전에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을 땅이 살기 좋은 도시로 개발된 후 행정구역 때문에 오히려 살기 불편한 도시로 변하는 것은 모순 중 모순이다.

우리는 땅에 살지만 모든 문제는 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위례를 3등분 하라는 땅의 요청은 없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자기 땅도 아니면서 땅빼앗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땅 따먹기 놀이도 전승되고 있다. 모든 전쟁은 거의 땅 빼앗기 놀음이었다. 땅은 가만히 있는데 객이 와서 서로 싸우니 땅의 입장에 있는 지신(地神)이 보시면 참 가관이 엄마일 것 같다. 하하. 헛소리는 그만하고 내일 위례 땅을 좀 心田耕作해볼 예정이다. 네가 송파 문씨 우물가에 살고 있으니 먼저 송파위례도서관을 가보고 그 삼경(三境) 주위를 둘러본 후 다시 이글을 잇기로 한다.

 

송파위례도서관에 가보았다. 그리고 주위도 대충 둘러보았다. 위례는 아파트와 빌딩이 많이 들어섰지만 남한산을 기대고 있어 산 땅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한성백제, 북한산성이 서울의 북쪽 병풍이라면 남한산성은 서울의 남쪽 병풍이다. 지리적으로 서울은 북한산과 남한산 그리고 중간에 한강이 흐르는, 북에서 보나 남에서 보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북한산에 올라 보든 남한산에 올라보든 서울의 조감도(鳥瞰圖)는 배산임수다. 사람들은 한강 줄기의 북과 남을 따라 배산임수를 즐기며 서울문명을 영위하고 있다. 동과 서에 산이 낮거나 없기에 서울의 바람배치는 東西風流. 背山臨水 東西風流. 네가 붙인 서울의 간략 풍수다. 하하.

 

송파위례도서관은 동사무소 건물 4층과 5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4층은 어린이실, 5층은 청소년 및 일반실, 아담하지만 깔끔한 도서관 인테리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서관 독립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건축 시 도서관을 예정하고 하중을 고려해 지은 건물인지 의심스럽다. 거여동 거마도서관이 그런데 이 도서관도 그 도서관을 벤치마킹했나보다. 돈 때문이라지만 정책결정자들의 근시안적 결정이 아쉽다. 또 서울의 공공도서관들은  도서관경영을 비전문 시설관리공단 등 관변단체에 위탁하고 있어 사서들은 그런 단체에 고용되어 숨을 죽이고 있는 형국이다.

 

자치행정의 구태의연을 보고 다시 흥분했나보다. 도서관에서는 사서들이 친절해 기분이 좋았으나 문화행정의 근본적인 문제에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도서관에 너의 책 인문학의 즐거움도서관 경영의 법칙을 기증하고 전쟁과 문명이라는 책을 빌렸다. 이 도서관에 다시 오기 위한 미끼 대출이다. 하하. 기분이 별로라 위례지역 전체 투어는 차로 한 바퀴 도는 걸로 때웠다. 다음에 남한산성이나 올라봐야겠다.

 

지리의 힘이라는 책이 있다. 영어 제목은 prisoners of geography지정학에 관한 책이다. 사람은 지리의 포로다. 정말 절묘한 표현 같다. 사람은 지리의 포로가 되어 살아간다. 우리는 여행을 하지만 다시 자기 연옥으로 돌아오는 회귀본능을 가졌다. 성남이나 하남이나 서울 송파나 어차피 지리는 연옥인 것을, 그 연옥 안에서 이권다툼을 벌여보았자 자기들만 손해다. 행정구역을 넘어 호혜적인 행정을 펼칠 때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해방의 행복을 맛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정치 행정은 시민을 위해 있다는 걸 중앙이나 지방이나 항상 명심했으면 좋겠다.

 

세네카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고 말했다 한다. 이 말은 대학 수능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말과 같다.

성질은 다를지 모르지만 도서관은 도서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교육 문화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 주민의 공정한 문화 복지를 위해 위례는 행정구역을 하나로 통합하든지, 3개 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호혜적 행정을 펼치든지,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정책결정자들의 임계 판단력(critical literacy)이 필요하다. 201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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