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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피천득 기념관

피천득 기념관

내비 앱 티맵을 검색하다가 주변 관광지 정보에서 잠실에 피천득 기념관이 있다는 걸 알았다. 롯데 민속박물관 옆에 있다고 했다. 박물관, 문학관, 도서관을 탐방하기 좋아하는 너로서는 좋은 정보다.

 

오늘 본격적으로 2학기 채점을 해야 하는데 집이 너무 추워 불편했다. 그래서 보다 성능이 개선된, 열효율이 높은 절전형 전기히터를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채점을 잠시 미루고 오늘 일요특권을 누리기로 했다. 새로 나온 히터를 구경하고, 점심도 먹고, 피천득 기념관에도 가 보기로 했다.

 

잠실에 나가 먼저 착한 점심(햄버거)을 먹은 다음 하이마트에서 전기 히터를 구경했다. 하지만 크게 개선된 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전기 요금이 무서워 사용을 자제 했던 오래된 히터를 그냥 써야 할까보다.

 

이어서 교보문고에 들러 어제 점찍어 둔 신간 라틴어 수업을 샀다. 서양의 역사언어학에 대한 상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인데, 값도 비싸지 않고 두툼하고 좋은 노트도 딸려 있어 좋았다. 이웃 교보문방에서 크로키 스케치북과 미술 펜도 하나 샀다. 교보에서 나와 지하상가 쉼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책을 좀 훑어보았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간혹 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길을 물어물어 피천득 기념관에 가 보았다. 한 문인의 생애가 비교적 조촐하게 전시되어 있다.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 노트, , 책장, 책상, 침대, 봉제인형 등 98세까지 장수한 할아버지의 외로운 삶의 흔적이 빛이 바랜 채 남아 있다.

 

피천득 선생은 예전에 중고교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렸던 유명한 수필가였다. 이름이 천득이라 더 유명한 문인이었다. 대개 수필가는 시인이기도 하다. 수필가가 소설을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다. 아마 장르의 성격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 같다. 소설가는 거짓말을 지어내야 하는데 수필가는 거짓말을 못한다. 너의 느낌에 그렇다. 네가 소설을 못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담한 기념관을 둘러보며 너는 일말의 허무감을 느꼈다. 고인이 살던 공간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여 고인이 쓰던 물건들을 그곳에 보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라를 보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고인을 역사적으로 기리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방법은 좀 달리 해야 할 것 같다는 평소의 생각이 오늘따라 더 짙어진다.

 

너는 윤동주, 이효석, 황순원, 김유정, 박경리, 천병상 등 여러 문학관을 두루 다녀 보았다. 어딜 가나 마음이 슬펐다. 인생 저렇게 살다 가는 것을.. 문학관에서는 작품집이나 저서를 팔지 않는다. 그래서 문학관에 가도 해당 문인의 작품이나 저서를 사 볼 수 없다. 그 분들이 남긴 고전을 그분의 문학관에서 구해볼 수 없다면 문학관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물론 도서관에는 그 분들의 작품이나 저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도서관 책으로는 공부하기 어렵기 때문에 책을 사서 본다는 걸 다 아실 것이다. 문학관 경영, 이제 좀 혁신하면 좋겠다. 문학관을 박제된 유물 전시장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해당 문인의 정신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책 마을로 만들기를 바란다. 고전은 인류의 정신이요, 고인들이 남긴 살아 있는 지혜다. 문학관, 박물관, 도서관은 인류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빛나는 지혜의 곳간이어야 한다. 2017.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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