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고전 교육
어제 가락에서 평생교육 소모임이 있었다. 송파와 위례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일종의 민간 교육네트워크 모임. 세계동화도서관 관장으로부터 『위례 라듸오』 창간호를 한권씩 받았다. 라디오를 옛 맛스럽게 일부러 ‘라듸오’라고 표현했다. 지난 1년간 평생교육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한 활동들과 의견들을 책에 담아 라디오처럼 전파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라디오라, 너는 목소리가 아직 늙지 않았으니 아나운서로 써달라고 농담을 했다. 하하. 진짜 써 준다면 너는 제법 낭랑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위례 교육문화 라디오 방송입니다. 본 방송은 한국방송윤리규정을 준수합니다. 본 방송은 2018년 1월부터 하루 30분간 시민교육 네트워크 소식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위례 라듸오』 발간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시민대학 추진위원회는 『위례 라듸오』 창간 출판 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이 간행물은 시민 누구나 자발적으로 평생교육 활동에 참여,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지역 교육문화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대학의 지난 1년의 활동상을 담고 있습니다. 출판기념회에는 이 아무개박사를 비롯 일곱 명이 참여하여 화기 애매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상 아나운서 이 아무개였습니다. WRS.” 이런 식으로, 하하.
책을 펼쳐보니 여름에 네가 나흘간 하루 2시간씩 지도한 청소년 동양고전입문 강좌에 참여했던 중학생들의 긍정적인 소감이 실려 있었다. 감회가 새롭다. 또 10월 말 어느 날 밤 10시에 급히 원고청탁을 받고 이틀 만에 써준 너의 글 “사랑하는 도서관 사랑받는 도서관”도 잘 실려 있었다. 어느 책이든 본인 이름이 들어가면 애착이 가는 법이어서 이 간행물도 제법 애착이 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커피숍에 들어갔다. 너는 메뉴에 가장 저렴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분량이 적어서 시킨 건데, 다들 네가 커피 진액을 좋아해서 시킨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하하. 어쨌거니 이것도 욜로(You only live once)족의 특색 있는 소비에 해당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며, 간장 종지에 담아온 에스프레소를 맛보았다. 그러면서 너는 뜬금없는 의견을 하나 꺼냈다.
“이제는 독서 실태조사를 할 때 인터넷 글을 읽는 것도 포함해야 하지 않겠나? 꼭 종이 책 읽는 것만 독서로 넣는다는 것은 이 정보사회에 말이 안 된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이랬더니 바로 반격이 들어 왔다. 요즘 아이들이 책을 안 읽어서 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엄마가 중학생 아이들끼리 주고받은 SNS 문자를 보여주었다. 거의 단답식, 은어, ㅋㅋㅋ, ㅠㅠ 뭐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너는 곧 말문이 막혔다. 그런 후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너대로의 답이 나왔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는 아주 효율적으로 소통을 한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의사전달만 잘하면 되는 SNS에 문법에 맞는 문장을 쓸 필요가 없다, 이거지. 그리고 『위례 라듸오』에서 너의 고전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글을 들여다보니 제법 문장들을 정연하게 써 놓았다. 그래 맞아, 그러면서 너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보았다.
어느 시대나 신세대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공부도 버릇도 부족해 보인다. 그런데 문명은 계속 발전했다. 신세대가 공부를 안 했다면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 너의 신세대 시절을 생각해 보면 같은 현상이 있지 않았나. 그래도 너희들은 공부를 해서 문명을 발전시켰고 또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 대한민국의 문명이 이만큼 세계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이런 걸 보지 않고 컴퓨터문명에 잘 적응하며 앞서 나가고 있는 세대들에게 SNS문자가 문장이 안 된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할 일은 정보사회에 역행하는 보수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아이들의 인성을 키워주는 일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사피엔스다. 슬기를 하나 더 붙여야 한다. 본 디지털(BORN DIGITAL)이라 하지 않는가? 이런 새 인류들에게 어른들은 고전을 새롭게, 새롭게[溫故知新] 전수하여 그들이 기술문명과 더불어 정말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문학적 기틀을 마련해 줄 책임이 있다. 과학기술도 알고, 사람도 알고, 역사도 알고, 문화도 아는 인간이 전인 아닌가? 2017. 11.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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