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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눈감으면 보이는 것들

눈감으면 보이는 것들

 

오늘 새벽잠을 깨니 불현 듯 눈감으면 보이는 것들이라는 글 제목이 떠올랐다. 무슨 글을 쓸까하고 며칠 동안 고민하다보니 무의식중에 그런 제목이 너의 머리에 왔나보다. 영감(靈感)일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 비로소만 넣으면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 제목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그 책 제목의 패러디는 아니다.

 

어쨌든 눈을 감으면 눈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세상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은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또 다른 영적 세계의 모습일 것이다. 예전에 눈감으면 고향이 눈 뜨면 타향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가사와 눈감으면 보이는 것들아라는 글 제목은 어쩌면 동일 계열의 시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지나간 세월은 현실적으로는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아련한 추억들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한다. 친구들과 풀밭에서 소에게 풀 뜯기며 놀던 기억, 애인인지 뭔지도 모르면서 오솔길에서 만났던 친구의 동생, 아니 친구의 오빠, 헤어지기 싫어 오솔길을 넘나들며 쐐기나 팍 쏘여라하고 풋 사랑 섞인 익살을 떨던 그 때 그 추억, 이런 추억은 다만 필자만의 아름다운 추억은 아닐 것 같다.

 

그런데 그 눈감으면 떠오르는 추억이 반드시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추억들 중에는 하지 말았어야 했을 과업들도 있으니,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던 기억, 아이들이 롤러스케이트장의 스케이트를 타고 울타리를 벗어났다고 도둑으로 몰려 경찰에 불려갔던 기억, 집 사람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그 아픈 기억, 그런 기억들은 아무리 눈을 감아도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 했다. 어떤 좋지 않은 기억들도 세월이 가면 잊어지는 법이니까. 신문방송에서 그렇게 떠들던 정치, 경제, 사회의 비리문제, 예전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의 붕괴, 희대의 범죄자 신아무개, 조아무개 이야기 그 모든 과업들이 추억의 세월 속으로 묻혀 들어가고 있다.

 

2017년의 과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대통령 탄핵과 새 대통령의 선출,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중국의 사드보복, 미국의 한국 대기업 탄압, 정당들의 분열과 당파싸움, 이 모든 것이 현재 진행형이면서도 해결의 실마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늘어만 가는 비 인륜적 범죄, 청소년 범죄,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거의 날마다 텔레비전을 타고 들어와 시청자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이 갈등을 푸는 모멘트는 아무래도 불교의 힘일 것 같다. 불교는 언제나 인류의 평등과 세계평화를 지향해왔다. 불교는 전쟁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의 힘으로 전쟁을 예방하려한 것이 2차례에 걸친 고려 팔만대장경판 판각사업이다. 지금도 합천 해인사 수다라 장경판전에 웅장하게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판, 그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자랑일 뿐 아니라 우리가 실천해야할 정신문화의 교과서이다. 팔만만대장경 축제도 좋고, 세계문화유산도 좋고, 다 좋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팔만대장경의 불심을 이 땅에서 지금 구현해 내는 일이다.

 

이제 가는 세월, 오는 세월, 세월을 원점으로 돌려 세월 속에 남긴 우리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눈을 뜨고도 눈을 감고도 부처님의 세계를 마음으로 볼줄 알아야 한다. 정신이 병든 인류를 치유하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일, 그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과업이라는 것을 이 해를 보내며 더욱 더 깨달았으면 좋겠다. 2017. 10. 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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