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소설론
오늘 아침 생활소설(LIFE NOVEL)이라는 조어가 떠올랐다. 아마 소설을 쓰고 싶다는 너의 잠재의식이 투영되어 나왔나보다. 너는 소설을 못 쓰고, 또 안 써 왔지만 FACT가 있는 이야기들은 거의 매일 쓰고 있다. 그러면서 소설도 좀 FACT가 있어야 어색함을 면할 수 있고 진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전문 소설가들이 보기엔 좀 맞지 않는 아마추어적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는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모습이, 사유하고, 외출하고, 충치 빼고, 틀니하고, 전화하고, 학교가고, 건강 검진을 받고, 인관관계를 맺고 이렇게 일상을 사는 이 모습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륜, 폭력, 전쟁 등 어떤 유별난 사건의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플롯을 갖춘 정형화된 어색한 픽션 보다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전개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 시대상을 진솔하게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소설은 문자 그대로 ‘작은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은 삶의 이야기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모이면 그 이야기 가운데 문학적으로 좋은 작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소설을 쓰려면 글 솜씨가 좋아야 한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생활 소재가 있다 해도 글로 맛깔스럽게 엮어내지 못한다면 일기는 쓰지만 소설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내 인생은 소설책을 한권 써도 모자란다는 말, 그래놓고 그분들은 소설을 쓰지 않으니 소설이 안 나오는 것이다. 소설책을 한권 써도 모자란다면서 왜 소설책을 쓰지 않으실까? 여러 핑계는 많지만 사실은 글을 잘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글 표현인데 아무리 좋은 생각과 생활 사례를 가지고 있어도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작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너는 평소에 생활하면서 느끼고, 경험하고, 깨닫는 모든 것들을 그때그때 포착하여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면 너는 고희를 지난 어느 시점, 손주가 초중학교 다닐 어느 때쯤에 아마 진솔한 생활소설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 오후엔 서울대학교 박물관 수요시민강좌에서 구비문학의 일종인 우리 소리문화와 판소리에 대하여 강의를 들었다. 고려대 국문과 교수의 강의였는데 판소리를 수준급으로 실연하면서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했다. 심청전에서 심 봉사 눈뜨는 장면을 묘사할 땐 너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셨다. 참 이상하지, 판소리를 듣고도 눈물이 나니. 늙어서 그런가, 하하. 아마 이런 게 문학인가보다. 작품을 통해서 인생의 희로애락과 진면목을 느끼고, 공감하고, 깨닫고, 반성하게 되는 것, 그래서 우리의 생활에 위안과 평화 그리고 희망을 얻게 되는 것, 이런 것이 문학의 힘인 것 같다.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도 이야기를 잘만 엮어낸다면, 그 이야기 속에서 감동과 평화와 희망을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좋은 소설이자 좋은 문학이 아닐까. 오늘 그 판소리 강의에서 그 교수 역시 너와 동질적인 말을 하나 꺼냈다. 예술에는 생활예술과 공연예술이 있다고, 생활예술이 발전하여 공연예술이 되는 거라고. 하하. 그래서 너는 또 위안을 얻었다. 소설에는 생활소설과 작품소설이 있다고, 생활소설이 발전하면 작품소설이 되는 거라고. 하하. 2017. 11. 8(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