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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송곳니

결국 위 송곳니를 뽑다.

 

오늘 치과에 가서 뿌리만 남은 위 송곳니를 뽑았다. 너는 2013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이를 치료하고 부분 틀니를 했다. 본 이 32개 중 17개가 남은 상태에서 남아 있는 이에다 틀니 부품을 부착하고 틀니를 걸었던 것이다. 그 때 로데오치과에서 본뜬다고 입에 반죽을 넣었을 때 목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그 젊은 의사가 좀 서툴렀나보다. 그리고 그 땐 위 오른쪽 송곳이가 멀쩡했었는데, 2016년 여름부터 그 잇 뿌리에 구멍이 생기더니 20161213일 이 상단이 완전 떨어져 나가고 충치 먹은 잇 뿌리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너는 양 옆 이가 무너질까봐 그 잇 뿌리를 뽑지 않고 견뎌 왔는데 입 냄새가 심한 것 같아 뽑아버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복지관에 가지 않고 쉬면서 여유를 부렸다. 가락동에 나가 숙주나물이 많이 든 베트남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거리를 지나다 박 치과를 발견했다. 전에 치료받았던 로데오치과는 원장이 바뀐 후 한번 갔었는데, 별로 친절하지 않아 치과를 바꾸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지. 하하.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로 박 치과에 전화를 해보니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상냥한 응답 멘트가 나왔다. 12시 경인데, 몇 시에 진료 가능하냐고 물으니 점심시간 이후 2시부터 진료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양치를 하고 책을 좀 보다가 시간에 맞추어 다시 그곳으로 걸어갔다.

 

처음 간 병원이라 우선 접수를 하고 기다리니 다른 환자들을 돌보느라 그런지 시간이 약간 지연되었다. 박 치과라는 상호로 미루어 남자의사이겠거니 했는데 벽에 걸려 있는 경력을 보니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나온 여자의사였다. 의사가 둘인데 둘 다 서울대학교 출신이었다. 그런데 한 분의 경력에는 서울대학교를 서울 대학교로 띄어쓰기를 했네. 하하. 곧 의사가 왔다. 친절했다. 의사는 정겨운 경상도 말투의 소유자. 직접 너의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걸어주고 진료를 시작했다. 미리 혈압을 쟀는데 혈압은 129-78, 의사는 잇몸 마취를 하고는 또 다른 환자를 보러 가셔버렸다. 한 참을 기다리다 누워 있기가 지루해 진료 의자에서 내려 일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사가 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곧 이 뽑기에 들어갔다. 죄송하다는 그 말 한마디에 너의 지루함은 사라졌다. 진료 의자에 누우니 얼굴에 구멍 난 녹색 천을 덮었다. 그 구멍을 너의 입에 맞추어 놓고 입을 벌리라 했다. 하하. 지시에 따르니 한참을 낑낑, 이뿌리가 깊어 빼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그런데 전혀 이가 빠지는 것 같지 않았는데 의사는 어느새 이를 빼고 급히 다른 환자를 보러 갔다. 매우 바쁜 의사다. 이 뺀 자리에 간호사가 넣어주는 솜을 물고 간호사의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는 접수대로 내려오니 진료비는 73백 원, 목요일 오후 2시에 다시 오라했다. 어어. 예예라고 대답했는데 어어 라고 반말이 나왔다. 하하. 약국의 소염제는 12백 원, 그리하여 이렇게 또 오래된 너의 바이오부품 하나를 철거했다. 2시간 후 솜을 빼고 따듯한 물에 밥을 말아 마른 김을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실버초교 6-5, 벨 파워. 2017.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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