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화법과 책, 그리고 손주 백일 금반지
‘욜로’화법이란 네가 지어낸 말이다. 인터넷에 보니 ‘욜로족’이라는 말이 나오고 ‘욜로(YOLO)’의 풀 네임은 You Only Live Once, 라고 나왔다. YOU가 주어이니 자네가 주로 사용하는 ‘당신화법’인 셈이다. 언제부턴가 너는 일기를 쓸 때 주어를 너라고 쓴다. 객관성을 좀 제고해 보려는 방법이지만 약간의 재미도 있다. 그래서 ‘욜로’화법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본다. 영어 약자를 너무 남발하는 것은 좀 미안한 일이지만 그것도 세계시대니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너희 인생은 단 한번뿐이다. 그래서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가치는 누가 정하는가. 바로 네가 정한다. ‘욜로’는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 낭비하는 걸 의미한다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가치 있는 삶이란 자신의 이상을 꾸준히 줏대 있게 추진하는 삶일 것이다. 그래서 만일 낭비하는 삶이 가치 있다고 정하면 낭비가 가치가 있을 것이지만 너는 어렸을 때부터 어렵게 살아 그런지 낭비를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비를 아껴 책을 더 사 보는 편이다. 책값 낭비?
그런데 2017년 11월 3일 금요일, 네가 꼭 갖고 싶었던 책 “역사용어사전”을 선물 받았다. 서울대 교수연구진 300여명이 10여 년간 공들여 만든 역사용어 해설서다. 가격이 무려 15만원이고, 2015년 판이라 구하기도 어렵다는데 얼마 전 너의 학문 동학 K선생에게 그 말을 꺼냈더니, 2주일 만에 그 책을 기어코 구해주셨다. 참 고마운 일이지. K선생은 지금까지 너에게 많은 책을 기증해 왔다. 그래서 너의 인문학도서관은 많은 부분 K선생의 기증본으로 채워지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 그 책들을 잘 활용하여 너도 좋은 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너는 저작 속도가 매우 더디다. 하지만 한 번 뿐인 인생이니 너의 의지대로 꼭 좋은 책을 더 만들어 내야 한다. 책을 사고, 책을 만들고, 책을 남기고 싶은 것이 너의 ‘욜로’라고나 할까.
그날 그 두꺼운 책을 들고 영등포 아들집에 먼저 들렀다. 손주 백일이라 백일반지로 금 반 돈을 사가지고. 하하. 한 돈을 사고 싶었지만 요즘 실버생활이 좀 어려워 한 돈은 돌잔치 때 하자고 마음을 달래었다. 손주를 안아보니 마냥 좋다. 아들이 사진도 마음껏 찍어준다. 100일 된 손주는 웃기도 하고 옹알이도 한다. 엄마 아빠가 인물이 좋아 손주도 인물이 좋다. 너의 손주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하하. 저녁을 잘 먹고 9시가 넘어 집으로 오는데 그 책이 좀 무겁게 느껴졌다. 아 이래서 빽팩이 필요한 거로구나.
토요일(2017년 11월 4일), 주말 반 서지학 강의를 마치고 잠실에 나가보았다. 일단 교보문고에 들러 일전에 책 광고에서 본 한영우 교수의 신간 『정조 인물평전 성군의 길』을 구경하고, 사지는 않았다. 대신 잠실지하상가 고려가방상점에서 맘에 드는 가방을 하나 골라 살까 말까 망설였다. 가방이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너의 ‘잡동사니 불매정책’ 위반인데, 그래도 책을 넣어 메고 다니기에 참 좋을 것 같아 그만 카드를 긁고 말았다. 아 이런 게 ‘욜로’ 소비인가? 그 가방을 메고 오늘 시운전을 했다. 경찰병원 역에서 교대, 사당, 충무로, 가락시장 이렇게 돌며, 정수일 교수가 풀이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읽다가 졸다가 했다. 가락시장에서 사과와 야채를 좀 사가지고와 전기밥솥에게 저녁밥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하하. 2017. 11. 5(일).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곳니 (0) | 2017.11.08 |
---|---|
쌀 빵 샌드위치 (0) | 2017.11.06 |
합천 대장경축제를 보고 (0) | 2017.11.02 |
학술답사 고창 무장읍성 (0) | 2017.10.29 |
학술답사 장성 필암서원 (0) | 2017.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