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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학술답사 고창 무장읍성

학술답사 고창 무장읍성

 

버스는 다시 서해를 향해 좁은 도로를 달렸다. 이번엔 전남에서 전북으로 가는데 아까 오던 길과는 달리 산이 보이지 않았다. 노령산맥이 흐지부지 된 어느 지점의 평야지대를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게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행정 경계는 인문 지리적 의미가 적은 것 같다. 가을걷이가 끝나 들판이 다소 황량 쓸쓸한데 남국의 햇빛이 쨍쨍해 다소 더위를 느끼며 우리는 무장읍성 앞으로 다가갔다.

 

무장은 전투를 위해 무기를 준비하는 군사무장이 아니라 고창군 무장면茂長面의 지명 이름이었다. 답사자료에 보니 무장의 지명유래는 무송(茂松)과 장사(長沙)의 두 고을을 통합하면서 그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하자면 행정구역을 통합한 지명이란다. 그런데 통합 지명에는 대개 원 지명의 좋은 의미가 사라지기 쉽다는 걸 너는 느껴왔다. 지명은 아니지만 30여 년 전에 숭실대학이 대전대학과 통합하면서 숭전대학이라고 한 것, 정말 의미가 없었지. 숭전대학은 얼마 못가 다시 분리되어 숭실대학은 본 이름을 찾았지만 대전대학은 그 사이 다른 대전대학이 나타나 본 이름을 찾지 못하고 한남대학으로 개명한 사실이 생각난다. 또 몇 년 전에 마산, 창원, 진해를 통합하는 도시를 만들면서 마창진, 마진창, 진창마 등 여러 이름이 거론되다가 결국은 창원시로 정했다는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하하. 무장이라. 무성한 솔숲마을 무송(茂松), 길게 펼쳐진 모래마을 장사(長沙), 그 아름다운 의미가 무장(茂長)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네. 그냥 무성하고 길다는 건 좀 막연하고 무미건조. 하지만 자네가 그 지명을 가지고 시비를 걸 입장은 못 된다. 시간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하하.

 

지나치게 밝은 가을 볕 아래 성을 둘러싼 초록 잔디밭, 그 위를 돌아가는 백황 회색 성곽 돌담이 대비를 이루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됐다. 성곽 입구 잔디밭엔 해자선형 위치라는 작은 팻말이 꽂혀있다. 해자(垓字)는 성 밖 둘레에 파 놓은 못이라는데 침입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로 막는 장치라고 했다. 석성 주위에 수성이라. 2중의 방어 시설. 그래서 해자를 수성(水城)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성 입구로 들어가는 문밖에는 커다란 화분에 백일홍이 빨강, 노랑선명한 원색을 자랑하며 피어있다. 백일홍, 정말 대단하다. 국화 말고 다른 화초들은 이제 시들고 말라 사양길인데 저들만은 굳건하게 미모를 자랑하고 있으니 아마 날수로 따지면 백일도 훨씬 넘었을 저 꽃들의 릴레이 마라톤 생명력이 참 대단하다.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경탄을 했다. Oh, Oh, One Hundred Days Flowers! Forget Me Not!

 

본의 아니게 영어를 썼네. 하하. 감탄해서 그랬지. 성으로 들어갔다. 잔디 언덕위에 멋진 객사 건물, 그 주위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단풍 옷을 갈아입고 담장넝쿨로 액세서리를 두르고 또 하나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 단풍, 단풍, 객사 뒤로 펼쳐진 잔디와 그 위에 한 무리의 대나무 숲, 그리고 기와를 이고 있는 긴 돌담이 솔 그림자를 허용하며 잔디밭에 가르마를 탔다. 그런데 저 간이화장실이 딱 눈에 거슬리네. 참 내 원, 화장실이 화룡점정(畵龍點睛)? 어불성설, 어림없는 일이지. 당장 기중기 굴삭기로 들어냈으면 좋겠다. 너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읍성이라는 역사성은 까맣게 잊은 채 수려한 경치에 도취되어 놀다가 말라버린 연 잎 호수 정자에 올라 아스라한 역사를 더듬어 본다. 연꽃 씨는 100년이 지나도 생명을 유지하며 조건이 맞으면 연으로 피어난다고 하는데. 이 연못이 그런 케이스라고 아까 해설자가 말했었다. 그 여성 해설자는 유독 사투리가 심해 마치 일본어 발음을 듣는 듯 재미가 느껴졌는데, 여러분들 연근 아시지요? 그 연근에 구멍이 몇 개인지 아세요? 연근의 구멍은 아홉 개랍니다. 그래서 사람의 구멍 수와 같다고 해요. 하하하.

 

읍성을 내려오니 경운기 한 대가 정겹게 쉬고 있다. 저 경운기도 인공지능 시대에는 무인으로 바뀔 것이다. 거리엔 전봇대가 전깃줄을 늘여 그 무게를 서로 나누어 감당하고 있다. 저들은 밤이 되면 이 아늑한 거리를 밝힐 것이다. 버스를 탔다. 이제 일일 여행을 마친 지루한 귀가 시간, 너는 아껴두었던 무공해 오곡 과자를 꺼내 양 옆 할머니들께 나누어 드렸다. 네가 얻어먹은 것에 비하면 절반의 보답도 못 되지만 할머니들은 반가워하며 다음 답사 때도 이 뒷자리에 이렇게 같이 앉자고 농담을 했다. 그러면서 아까 마트에서 산 샘플 복본자술을 하나씩 꺼내 건배를 했다. 집에 오니 9시 반. 하하 구경 한 번 잘했네. 2017.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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