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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학술답사 고창 황윤석 생가

학술답사 고창 황윤석 생가

 

오늘은 서울대 규장각 금요시민강좌 팀이 주관하는 고적답사에 동참했다. 학기마다 한 번 수강생들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경로우대 나들이. 회비 2만원만 내면 왕복 관광버스비(안전보험료 포함), , 점심식사, 고적지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독서 자료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더욱 큰 특혜는 개인적으로는 가보기 어려운 우리 산천 고향의 정겨운 풍경을 옛 추억과 함께 몸소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가는 곳은 전북 고창에 있는 조선 후기 실학자 황윤석 선생 고택과 무장읍성 그리고 전남 장성에 있는 필암서원이라 한다.

 

어제 밤 10시 정보사회론 야간강의를 마치고 11시에 귀가한 탓에 다소 피로감이 있었지만 잠을 깨니 머리가 제법 맑다. 새벽 4, 실버는 잠이 적은 게 보배다. 집에서 7시에 출발하면 되므로 3시간 여유가 있는데 또 누워 있을 수는 없다. 그랬다간 온수매트 따뜻한 이불 속에서 또 스르르 잠들 수 있으니. 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어제 초안 잡은 사랑하는 도서관, 사랑받는 도서관원고를 수정하여 청탁자께 이(e) 메일을 날렸다. 요즘은 메일을 보낸다는 말 대신 날린다, 쏜다, 라는 말을 잘 쓴다. 하하. 그리고 아침식사를 했다. 메뉴는 고추장 김밥, 풋고추 된장, 볶은 땅콩, 홍시 한 개. 맛이 있다. 그리고 꺼내 놓은 배낭에다 하루 돌아다닐 생필품을 챙겼다. , 과자, 구운 계란, 소금, 초콜릿, 믹스커피, 메모지, 카메라 봉, 스마트폰, 3만원, 하하. 그리고 회색 줄무늬 남방에 얇은 주황색 등산 재킷, 검은 막바지에 회색 운동화, 머리엔 360도 차양 둥근 모자를 얹고 거울을 보았다. 오케이, 안전점검 차 숙소를 3번 순회한 다음 7시에 집을 나섰다.

 

하나, , 걸음 준비운동을 하고 가락시장역까지 5백 미 마라톤을 했다. 얼굴에 다가오는 청량한 시공이 짙은 가을 맛을 풍기는 아침, 하늘 단풍과 지상 낙엽이 정겹게 다가와 시상을 돋운다. 좋다, 좋아. 거리 청소부가 군데군데 모아놓은 낙엽더미를 발로 휘젓고 달려가고 싶은 동심이 왔다. “파괴는 건설이다”, 하지만 중후한 인격이 차마 그럴 순 없지. 하하하. 6번 출구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다. 그 에스컬레이터는 상습적으로 작동을 멈추는 고장다발 에스컬레이터다. 네가 고장 신고한 것만도 몇 차례다. 좀 제대로 고치지 않고 역무원들이 뭣들 하고 있나. 5번 출구로 우회했다.

곧 열차를 탔다. 역시 무임승차. 실버라도 너무 무임승차를 많이 하고 다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서울시에서 주는 노인복지 혜택이니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실버가 저리 많이 다니는데 다 무임승차라니 지하철 경제가 적자날까 걱정된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필요한 걸까? 아니면 행동경제학이 필요한 걸까? 83분전에 사당역에 도착, 1번 출구 공용주차장을 향해 경보했다. 8시 정각 기다리고 있는 버스 규장각 2호차에 올랐다. 자리가 꽉 차 제일 뒤 높은 자리에 앉았다. 왼 쪽으로 둘, 오른 쪽으로 하나, 뒷줄 세분이 다 여자 어르신들이다. 네가 시간을 너무 딱 맞춘 건 희소한 일이지만 희귀한 일은 아니다. 10분 정도는 먼저 도착했어야 너의 적성에 맞는데. 하지만 버스는 코리안 타임을 잘 지키고 811분에 출발했다.

 

답답한 시내를 벗어나니 으레 그러하듯 자연과 들녘이 펼쳐진다. 들녘은 중추가절의 황금물결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흰색 비닐로 포장한 짚단뭉치들만 무질서하게 떠돌고 있다. 저 벼 짚단들은 겨울 소의 먹이가 된다. 짚 풀 먹고 월동하는 소들은 쌀밥에 고기 먹고 겨울나는 인간보다 힘이 세다는 게 참 풀리지 않는 너의 의문이다. 동물학자들은 이 문제를 연구해보았을까? 찾아보면 이에 대한 연구 논문이 있을지도 모르지. 소들은 채식주의자인데 왜 말라비틀어지지 않고 오히려 질 좋은 고기를 만들어낼까? 그래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문학적 고뇌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허구라 할 수 있다. 하하. 그래서 문학은 문학으로 보아야 하나보다.

 

버스가 고속도로 주행 안정을 찾을 무렵, 양 옆 할머니들이 온갖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신다. 초콜릿, 쌀 눈, 햇 대추, 사과와 감 슬라이스 과일 세트 한 컵, 그리고 커피까지. 역시 먹을 것은 여성분들이 잘 챙긴다. 이것도 미안해지는데 어쩔 수 없이 받아먹어야 한다. 다들 동료 수강생인데 이럴 때 말도 트고 얼굴도 익히는 게 좋다. 공주 어딘가 알밤 휴게소에 내렸다. 먼저 화장실장의 결재를 받고 바람을 쐬다 다시 차에 올랐는데 어떤 분이 차에 들어와 해바라기 씨를 찻숟가락으로 한 수저 씩 떠 주며 한 봉지 사라고 한다. 전립선에 좋고 어디에 좋고, 들어보니 만병통치, 너는 살 마음이 별로 없는데 오른쪽 할머니가 1만원을 꺼내더니 다섯 봉지를 사버렸다. 그러면서 너를 포함한 뒷좌석 세 명에게 한 봉지씩을 나누어주신다. 하 참. 인심도 좋으셔. 뒷좌석에 앉기 참 잘했군. 해바라기 씨를 다 먹어보겠네.

 

버스는 1140분 쯤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말 황토의 시골마을, 황윤석 선생의 생가는 제법 잘 지은 초가였다. 가옥 전체가 자 형 구조로 집이 4채인데 집마다 기둥과 서까래가 튼튼하고 촘촘해 기와를 얹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해마다 이엉을 엮어 이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초가를 고수했을까? 보아하니 부잣집 같은데 초가지붕을 한 이유가 있었을까? 천장과 벽채는 황토, 울타리 토담도 황도다. 옛 사람들의 따스한 흙집, 소죽을 끓이던 옛날 솥이 그대로 걸려있다. 뒤뜰엔 장독대가 넓고 시원하게 전개되어 있다. 네가 살던 계룡산 그 허름한 초가집에 비하면 이곳은 호남평야 곡창지대의 대 농가 탄탄한 초가집이다. 그래서 황 선생님이 공부할 여건이 충분했는지 모른다. 머리 좋고 여건이 되면 공부는 할 수 있는 거니까. 하하.

 

밥을 먹고 다시 글을 잇는다. 안내자에 따르면 황윤석 선생은 조선 후기의 과학자, 즉 실학자였다고 한다. 생가 앞에 게시되어 있는 알루미늄 판 안내문을 보니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은 영조 5년에 나서 정조 15년에 몰한 조선 후기 실학자였다. 군자치일물부지 君子恥一物不知 군자는 한 가지 일이라도 모르면 부끄러워해야한다는 좌우명을 걸고 문학, 경제학, 역사학, 윤리학, 종교, 수학, 군사학, 천문, 지리, 언어, 예술, 의학, 풍수 등 그야말로 실생활과 관련된 정신적 물질적 학문을 두루 섭렵하며 서양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은 책을 수집했다니 말하자면 조선 후기의 진정한 실학자였던 것 같다. 당시의 쟁쟁한 실학자 홍대용, 신경준 등과 교류했다는데 정약용은 교류 명단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 궁금해서 정약용(1762-1836)의 생존연대를 찾아보니 정약용이 더 어리다. 두 분의 생존기간이 29년간이 겹치는데 정약용이 어려서 아마 황윤석 선생을 만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자료를 더 찾아보아야겠다.

 

황윤석 선생의 저서로는 10세 부터 63세 까지 53년의 견문을 기록한 일기문집 이재난고 頤齋亂藁가 유명하며 이외에도 이수신편 理藪新編, 자지록 恣知錄(이 책 제목은 꼭 한문으로 써야겠다. 아이들이 보면 놀리겠다. 하하), 역대운어 歷代韻語, 성씨운휘 姓氏韻彙, 성리대전주해 性理大典註解300권이 넘는다니 이를 믿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알루미늄 안내판 기록자는 황윤석을 동시대 프랑스의 백과전서파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에 비유하고 있다. 디드로가 일기를 썼나? 하하. 황윤석의 일기 이재난고 頤齋亂藁에 대해서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펴낸 책 일기로 본 조선(글항아리, 2013)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규장각에서는 금요시민강좌 강의 자료를 수정 보완하여 매 학기 책으로 발간하고 있는데, 강의를 듣고 나중에 발간되는 책을 보면 정말 꿩 먹고 알 먹는고전공부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금요시민강좌는 노인들을 위한 단순한 경로잔치가 아니라 고전공부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참 잘하는 일이다. 무릇 도서관은 자고로 그래야 한다. 이는 규장각만이 아닌 전 도서관이 해야 할 의무적 업무다. 이것이 자네가 도서관의 역사를 연구해오면서 깨달은 도서관의 역사적 본질이다. 역사는 암기하기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과거 인류의 지혜와 비 지혜의 역사를 살펴 현실을 제대로 깨닫고 현생인류의 삶의 품질을 멋지게 구현해내기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닐까? 책만 닥치는 대로 읽어 을밋을밋한 간서치(看書痴)를 만드는 게 도서관의 목적이 아니라 진짜 참 공부를 도와주어 인류를 똑똑하게 만드는 게 도서관의 목적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똑똑히 깨달아야 하겠다. 모든 도서관은 좋은 책을 구입하고 활용하고 나아가 좋은 책을 출판해야 한다. 왜 또 자네 흥분하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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